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왜곡된 브라질의 대의민주주의 선거제도 개혁 반면교사 삼아야

입력
2015.01.21 04:40
0 0

한마디로 ‘반면교사’이다. 우리가 브라질의 국회의원선거제도는 물론 정당 체계와 대통령선거제도 등에서 찾을 수 있는 교훈 말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중(대)선거구제로 전환하거나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함으로써 지역주의에 기초한 양당제를 더욱 강화시키는 현행 국회의원선거제도를 개혁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승자독식의 양당제 대신 다당제를 유도하고 연정을 활발하게 이용해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분산시키자는 말도 나온다.

브라질은 이 모든 것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결과는 암울하다.

브라질은 주(州)를 하나의 권역으로 묶어 최소 8명부터 최대 70명까지 연방하원의원을 선출하는 대선거구제를 시행하고 있다. 총 27개 권역에서 각각 다수득표자 순서대로 당선자가 결정되는데, 유권자는 개방형 비례대표 후보 명부를 놓고 1표만 행사한다. 득표율에 따라 정당별 의석이 배분되고, 개인 득표 순위에 따라 의석 수 범위 내에 든 후보자가 당선자로 최종 결정된다. 유권자가 2표(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행사하고, 정당 득표율에 따라 폐쇄형 후보 명부에서 비례대표를 뽑는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브라질의 ‘개방형 명부 대선거구제’는 얼핏 매우 민주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예컨대 인구가 무려 4,000만명이 넘어 하원의원정수가 70명에 달하는 상파울루주에서는 이론상 각 정당마다 후보자 수가 최대 70명이 될 수 있다. 2~4명을 뽑는 한국의 기초의원선거에서 3인 선거구의 경우 한 정당이 최대 3명의 후보를 내보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실제 2002년 선거 당시 상파울루주에서는 후보가 793명까지 난립했다. 유권자 입장에서 볼 때 투표용지에 800명 가까운 후보의 이름이 올라 있다면 그들의 경력이나 공약은 물론 이름을 아는 것조차 쉽지 않다. 브라질에서는 최소 20여개 정당이 경쟁하고 있으니 유권자는 결국 후보의 전문성보다는 정당을 기준으로 투표하게 된다.

이러한 제도 아래에서는 매우 엉뚱한 선거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2010년 하원선거 당시 상파울루주에서 당선된 에레라도 올리베이라 실바(50)의 사례가 단적인 예다. 그는 ‘치리리카’(심술쟁이)라는 예명으로 방송활동을 하며 이름을 알린 가수이자 광대인데, 우스꽝스러운 광대 차림으로 선거운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나를 찍어도 더 나빠지지 않는다. 하원의원이 뭐 하는지 모르지만 당선되면 알아보겠다”는 자극적인 슬로건을 내세워 전국 최다득표(134만8,295표, 득표율 6.4%)를 기록한 것이다.

실바는 심지어 당선 직후 국어시험을 봐야 했다. 문맹은 고위공직자가 될 수 없다는 현행법에 근거해 정치적 반대파에서 그가 문맹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실바는 4년 임기 동안 의회에서 단 한차례도 발언을 하지 않았을 만큼 별다른 활동이 없었지만, 2014년 총선에서도 전국 2위 득표수에 해당하는 101만6,796표를 얻어 재선에 무난히 성공했다.

후보 입장에서는 자신의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자극적인 이름이나 선거운동에 기대고 정당에 의존하다 보니 정책이나 공약은 뒷전이다. 유권자가 후보를 잘 모르고 찍는 경우가 많아 의정활동에 있어서 의원들의 책임감도 떨어진다. 권역별 대선거구제로 인해 후보가 많다 보니 전체적으로 선거비용도 엄청나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20개 이상의 정당이 의석을 가지고 의회에 진출하다 보니 정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연정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유권자가 지지했던 의사와 무관하게 연정의 파트너를 찾고 장관직을 임의적으로 나눈다. 한국에서는 연정이 민주적인 분권형 장치로 여겨지지만, 브라질에서는 연정 과정에서 대의민주주의가 왜곡될 수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지난해 재선에 성공한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총 513명의 하원의원 가운데 9개 정당으로부터 304명(59%) 규모의 연정을 이끌고 있다. 39개의 장관직 가운데 13개는 집권당인 노동자당(PT)에게 할당됐고, 부통령이 속한 제2당 브라질민주운동당(PMDB)에게 6개, 나머지 연정 파트너인 7개 정당에게 각각 1,2개씩 배분됐다. 호세프 대통령은 나머지 11개 장관을 정당 소속이 아닌 사회인사 가운데 지명했다.

브라질의 다당제는 대선거구제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원인이기도 하다. 특히 브라질에는 ‘봉쇄조항’이 없어 불과 1,2%를 득표한 정당도 의석을 분배받는다. 유효 투표총수의 5% 이상을 획득한 정당에 한해서만 비례대표 의석을 나누는 우리와는 다른 것이다. 브라질의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제도도 다당제를 확대재생산하는 요인이다. 정당이 조금만 득표해도 의회에 진출하고 결선투표에서 당선가능성이 큰 후보를 지지하는 대가로 장관 자리를 보장받다 보니 창당의 유인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브라질에서도 주요 정당은 5~6개에 불과하지만, 지금의 의회는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28개의 정당으로 구성돼 있다. 이렇게 많은 수의 정당은 브라질에서 부패가 사라지지 않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