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 근간 허물고 증세 논의 제외 논란 갈수록 증폭될 가능성 커
2차 연말정산 법리상 할 수 있지만 복잡한 절차 등 현실적 혼선 불가피
연말정산 파동이 결국 ‘소급 적용’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면서, ‘13월의 세금폭탄’에 분노하던 봉급생활자들의 관심이 과연 얼마나, 어떻게 돌려 받을 수 있을지에 쏠리고 있다. 하지만 돌려받는 돈이 늘어나는 이들로선 당장 어느 정도 만족할 수도 있겠지만, 조세의 근간이 허물어진데다 복지 증세 등의 논의는 제외돼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수그러들기보다는 갈수록 증폭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양상이다.
정부는 이번 연말정산에 대해 소급 적용하는 방안을 여야가 협의해 입법 조치를 추진하면 그 결과에 따르기로 했다. 정부가 3월말까지 연말정산 결과를 분석해 보완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인 만큼 소득세법 개정안은 이르면 4월 국회에서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소급 적용이 결정되면 현재 하고 있는 연말정산과는 별도로 바뀐 세법에 맞춰 다시 연말정산을 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매년 종합소득세 신고가 이뤄지는 5월 전후가 2차 연말정산 기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2월말쯤 연말정산에 따른 환급 또는 추가 징수가 진행되고, 이후 다시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는 얘기다.
연말정산 소급 적용은 전례가 없지만 법리상으로 가능하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국세기본법상 ‘소급 과세 금지’라는 조문은 시행령이나 훈령을 통해 과세하는 걸 막는 장치일 뿐, 납세자에게 유리하면 소급 입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납세자에게 불리하면 위헌 소지가 있지만 납세자에게 유리한 상황이 납세자 전반에 영향을 주면 소급 적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장의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올해 연말정산이 끝나고 환급과 추가 납부 등이 완료된 상황에서 다시 계산해 돌려주거나 걷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납세자, 회사, 세무당국 모두 번거로움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해도 현실적으로는 소급 적용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일부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지선 서울시립대 교수는 “소급 적용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여야 협의, 법 발의 및 통과, 시행에 따른 물리적인 시간이 들고, 이미 연말정산이 끝난 시점에 다시 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정부 관계자는 “어떤 식으로 가능할지 현재로선 모르겠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소급 적용으로 인한 법적 안정성 훼손과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인 납세의 의무가 도전 받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조세 저항에 휘둘린 나쁜 선례가 두고두고 조세정책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도 나올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2차 연말정산에서 돈을 토해내는 이들이 단 1명이라도 생기는 경우 법률적 문제를 제기해 위헌 소송까지 비화할 여지도 있다. 가뜩이나 세수 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인 만큼 세수 확보에도 비상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세제는 다른 어떤 정책보다 안정적이어야 하는데, 조세 저항이 커진다고 이런 식으로 자주 바꾸면 납세자의 도덕적 해이뿐 아니라 정책수립자의 도덕적 해이까지 불러올 수 있다”며 “이번 연말정산이 고소득층에게 걷어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사실상 복지 증세의 첫 단추라는 점에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오윤 한양대 교수는 “세법은 이해관계자가 특히 많아 앞으로 일만 터지면 엄청난 조세 저항을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당정이 이날 합의한 5가지 공제 항목을 두고도 일부 논란이 예상된다. 저출산ㆍ고령화 추세에 맞춘 공제 보완은 필요하다는 것이 공통된 견해이지만 독신자 공제율을 높여주는 것이 정책 집중도면에서 타당한 것인지 잘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종=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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