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과격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일본인 인질 2명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한 추정 시한이 하루도 남지 않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들과 직접 교섭이 가능한 효과적인 채널조차 찾지 못하는 협상력 부재를 드러내고 있다. 이어 아베 총리가 IS에게 몸값을 내지 않겠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밝히면서 인질 구출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지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22일 기자회견에서 “(두 사람의)안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어려운 상황이지만 조기 석방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질들은 시리아 북부의 반군 거점 라카에 억류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몸값 시한 앞두고 대화 채널도 못 찾아
일본 정부는 시리아와 이라크 지역 부족, 이슬람 수니파 주민 등도 IS에 가세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요르단에 설치한 대책본부를 중심으로 지역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부족 간부, 이슬람 지도자 등을 통해 IS와 접촉을 시도 중이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대화할 채널조차 찾지 못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분일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일본이 협상을 위한 실마리조차 못 찾고 헤매는 가장 큰 이유는 시리아 내전이 심해지던 2012년 3월 주시리아 대사관을 폐쇄해 요르단에서 외교 업무를 보면서 시리아 정보에 어두워지고 인적 네트워크도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일본은 그 동안 시리아 상황을 현지인을 통해 간접 파악하는 수준이었다.
이와 관련 일본 외무성 당국자는 “가공되지 않은 정보를 접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정보의)양과 질에서 모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고 산케이 신문은 전했다. 노나카 아키히로(野中章弘) 와세다(早稻田)대 교수는 아사히신문 기고에서 이스라엘에 치우친 일본 외교 행태가 아랍권의 분노를 샀다고 평가하면서 “일본인이 표적이 되는 것은 당연히 예측 가능했고 이럴 때를 위해 외교관은 평소 부족장 같은 유력자와 교분을 쌓아야 한다”며 “일본의 외교력이 매우 약해졌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인질 구출 작전을 거론하기도 하지만 성공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것이 일본측의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IS 홍보 담당은 일본 정부가 자신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경고한 대로 인질을 살해하겠다고 거듭 주장했다고 NHK가 이날 보도했다. 그는 인터넷 메신저를 통한 NHK 취재에 “교섭을 위해 나카야마 야스히데 외무 부장관이 요르단에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IS측이 일본 정부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음을 과시했다. 그는 “하고 싶은 것을 실현하겠다”며 일본 정부가 몸값 지불에 응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몸값 지불 의사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던 아베 총리가 이날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테러리스트에게 몸값을 내지 않는다는 2013년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방침을 재확인했다”고 영국 PA통신을 인용해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향후 대테러전에 적극 참여 가능성도
한편 일본 정부는 2월 18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테러 대책 국제 회의에 정부 대표를 파견할 방침을 굳혔다고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했다. 이 회의에는 아베 총리나 장관급 각료 참석을 검토 중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가 주도해 “대부분의 동맹국 정상급”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 회의는 인질 예고 살인까지 포함한 IS 등의 테러 대책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IS 문제가 갑자기 주요 외교현안이 된 일본의 대응도 과거와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본의 위기 대응 체계를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군사전문가 오가와 가즈히사(小川和久) 시즈오카(靜岡)현립대 특임교수는 2013년 알제리 인질 사건 때 일본 정부가 전용기 보내는 데 6일이나 걸렸다고 지적하며 일본은 ‘말만 하고 행동은 않는다’(No Action Talk Only)고 ‘나토’(NATO)라는 조롱 받는다고 소개했다.
일본인 10명이 숨진 이 사건 이후 자위대가 자국민을 구하기 위해 외국에 출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해졌다. 지난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 등으로 이미 적극적인 자위대 활동의 길을 터놓은 일본이 이번 IS 인질 사건 이후 대테러전 등을 명분으로 분쟁지역 개입에 의욕을 낼 가능성이 적지 않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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