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전문기업 이력조사 결과 11.2%가 학력·경력 등 속여
일부 대기업만 사전심사 진행, 전체 기업 포함 땐 두 배 넘을 듯
국내 대기업에 1년 이상 다녔던 A씨는 최근 학력위조 사실이 드러나 퇴사했다. 민간 고용검증회사에서 A씨가 제출한 학위증의 발급번호를 검색해 보니 다른 졸업자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위조사실이 발각될 것을 우려한 A씨는 지난해 11월 대학 학적과에 미리 연락해 팩스회신 요청이 오면 사전에 알려준 번호로 학위증을 보내달라며 서류 가로채기까지 시도했다.
또다른 대기업에 다니는 중국 국적의 연구원 B씨는 학력과 경력을 화려하게 속여 입사했다가 수년 뒤 적발됐다. 이 회사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과 와튼스쿨, 맥킨지컨설팅을 다녔다는 이력을 믿고 채용했지만 뒤늦게 검증과정에서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회사에서는 중국 연구원이 첨단정보를 빼내려는 산업스파이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의심이 들자 검증을 소홀히 한 것을 후회했다.
허위경력을 기재하거나 학력을 조작해 입사하거나 입사를 시도하는 지원자가 늘고 있지만 기업들이 이를 걸러낼 장치가 없어 고민이 커지고 있다. 기업들은 지원자들이 검증 자체를 꺼리는 부정적 인식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외국계 회사도 최근 인사부 임원과 부장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가슴을 쓸어 내렸다. 지원자를 채용하기 직전 검증을 해본 결과 학력을 위조하고 경력기간을 늘린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징계로 퇴사했는데도 자진해서 사퇴한 것으로 기재하고 직속상사를 다른 부서 사람으로 적어내기도 했다. 심지어 전직 인사담당자에게 연락해 허위정보를 알려주라는 요청까지 했다.
일단 입사하면 해고가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밀어 붙이기’식 지원을 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2013년 한 대기업은 학력조회를 입사 이후로 미뤄달라는 지원자의 요청을 받아들여 채용했다. 그런데 지원자가 제출한 미국 조지아공대 졸업증 사본이 뒤늦게 위조로 판명 났다. 사측 관계자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일단 취업한 뒤 노동법 운운하며 쉽게 물러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전했다.
최근 한 취업포탈사이트와 리서치 전문회사가 공동으로 기업 채용담당자 592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입사지원자의 허위정보 기재로 입사를 취소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25.8%로 조사됐다. 그럼에도 허위 이력서를 제출하는 지원자가 늘어나는 이유는 기업에서 이력서 기재사항을 사실이라고 믿는 인식이 강한데다 공식 경로보다 인맥 등 사적 경로로 입사하는 지원자도 적지 않아 검증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사 담당자들이 검증방법 자체를 모르고 있는 경우도 많아 허위 이력서 제출을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 지원자들의 입사포기 우려 탓에 검증 동의서를 받아내기 어려운 점도 이력 검증을 어렵게 만든다.
이처럼 허위 이력을 기재하는 지원자가 늘어나면서 사전고용심사업체를 찾는 회사들도 늘고 있다. 고급정보를 취급하고 보안에 민감한 외국계회사와 금융회사, 정보기술(IT)업체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제조업체들까지 심사업체를 이용한다. 심사업체들은 기업들의 의뢰를 받으면 지원자의 동의 하에 합법적으로 학력과 경력, 자격증, 신분증, 평판, 신용조회를 실시한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채용과정에서 증빙서류를 최대한 많이 제출 받고 검증 동의서를 받을 것을 해결책으로 권고하고 있다. 채용 이전에 검증을 철저히 하는 게 채용 후 뒤늦게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보다 기회비용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는 조언이다. 정혜련 퍼스트 어드밴티지 대표는 “검증절차는 누군가를 의심하고 불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정직한 지원자가 피해를 입지 않게 하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