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9주기 추모전
'TV는 TV다'와 동시에 후배 작가 10팀 참여
'2015 랜덤 액세스' 展 즉흥성 등 핵심 사상 오롯이
백남준(1932~2006)은 생전 백남준아트센터가 들어설 터를 둘러보며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 됐으면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자신의 업적을 추앙하는 공간이 아니라 백남준의 실험적인 예술정신을 계승하는 신진 작가를 위한 공간이 되기를 바란 것이다. 1월 29일 9주기를 맞아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가 추모전 ‘TV는 TV다’(6월 21일까지)와 함께 나란히 개막한 후배 작가들의 전시회 ‘2015 랜덤 액세스’(5월 31일까지)는 그런 의미에서 백남준의 유지를 본격적으로 실현한 기획으로 그의 예술적 성취를 한층 더 고양시킨다.
‘임의 접속’을 뜻하는 랜덤 액세스는 디지털 사회의 정보 접속 방식이자 즉흥성, 비결정성, 상호작용, 참여 같은 백남준의 핵심 사상을 담고 있다. 백남준아트센터는 앞으로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동시대 예술담론을 전파하기 위해 격년제로 랜덤 액세스를 운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참여한 국내 작가 10팀의 면면은 다채롭다. 전시 역시 영상, 설치, 사운드, 퍼포먼스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실험적인 방식으로 관객과 접속한다.
양정욱의 ‘노인이 많은 병원:302호’는 노인들이 부실한 이로 음식을 먹으려고 하거나, 침침한 눈으로 보려고 하거나, 흐릿한 기억을 떠올리려는 행위를 동적인 방식으로 구현한다. 실에 촘촘하게 맨 조그마한 나뭇조각들을 동력장치를 써서 천천히 교차하도록 만든 키네틱 아트는 노인의 관절처럼 천천히 서걱거리며 돌아간다. 우레탄 코팅을 한 널빤지가 맞닿게 해 끼익 하고 노인이 내는 듯한 소리까지 구현한 점이 놀랍다. 침침한 눈으로 뭔가 보려고 하거나 흐릿한 기억을 떠올리려는 행위는 발광다이오드(LED)로 표현했다. 작가는 노화에 따라 느려질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쇠퇴를 노인들이 받아들이는 과정이나 태도를 작품에 녹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승원의 ‘멜랑콜리아 1악장과 2악장 협주곡’은 관객의 참여를 유도한다. 높게 쌓인 소주 박스 사이에 꽂혀 있는 색색의 긴 나무막대기는 관람객이 자유롭게 빼고 낄 수도 있으며 가랑이 사이에 끼고 돌아다닐 수 있는데, 이 우스꽝스러운 광경은 CCTV가 찍어서 모니터로 보여준다. 차미혜는 서울 청계천 4가 주변을 거닐다 우연히 들어간 오래된 영화관 바다 극장의 풍경을 담은 영상물 ‘바다’로 공간과 사람의 관계 맺기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이밖에 김시원, 윤지원, 이수성, 김웅용, 다페르튜토 스튜디오, 서영란, 오민, 이세옥, 최은진이 랜덤 액세스에 참여한다.
박만우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단순히 백남준 추모로 끝나는 게 아니라 최근 사운드 아트와 설치미술, 퍼포먼스 등 분야 간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영국의 젊은 예술가 하룬 미르자에게 2014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을 수여하고 백남준의 예술적 자산을 이어가는 국내 신진 작가들을 위한 전시까지 열게 되어 뜻 깊게 생각한다”며 내년 10주기를 앞두고 국내외에서 다시 한 번 백남준이 조명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백남준아트센터는 내년 4월께 프랑스 파리시립미술관과 공동기획으로 백남준 특별전을 여는 등 백남준 조명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한편 이번 ‘TV는 TV다’ 전에는 백남준이 처음 만든 샹들리에 형태의 설치작품 ‘비디오 샹들리에 1번’, 일본 엔지니어 슈야 아베와 함께 개발한 아날로그 영상 편집 장치 ‘백-아베 비디오 신시사이저’, 12개의 모니터가 달의 성장을 보여주는 ‘달은 가장 오래된 TV’, 1974년 백남준이 직접 법의를 걸치고 퍼포먼스를 하기도 한 ‘TV 부처’, 실존 인물을 소재로 만든 로봇 시리즈 ‘밥 호프’ ‘찰리 채플린’ 등이 선보인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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