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 대선 개입 사실로 확인 MB, 국민 앞에 사과하라"
"사건 초기 부인하다 일탈로 박 대통령이 이젠 대답해야" 촉구
사법부가 9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지난 대선의 정당성 논란이 재연될 전망이다. 1심과는 달리 이번 판결을 통해 국정원의 대선 개입 정황이 뚜렷해진 만큼 야당이 적극적인 국면 전환을 시도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대선 주자로서 엇갈린 이해관계에 있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하고 있는 반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상승세를 타고 있는 상황도 논란 확산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선거법 위반 인정”… 적극 공세 나선 野
야당은 지난해 ‘정치관여 유죄, 선거개입 무죄’라는 1심 판결 직후 대선 불복 프레임을 의식해 적극적인 공세에 나서지 못했다. 국정원이 정치에 관여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정치의 한 행위에 포함되는 선거 개입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을 두고 야당은 물론 법조계 안팎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는 얘기가 나왔지만, 야당 입장에서는 쉽사리 발을 담글 경우 대선 불복 논란에 휩싸여 오히려 역풍을 맞을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박근혜정부 하에서 사법부에게 더 나은 판단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깔려 있던 것도 사실이다. 유은혜 새정치연합 대변인이 논평을 통해 “1심 판결에 대해서 사법부 내에서조차 ‘지록위마 판결’이라는 질타가 쏟아져 나왔는데 오늘 항소심에서 비로소 사법정의가 바로 세워졌다”고 언급한 것, 정의당이 “1심의 괴이한 판결이 이제야 정상적인 궤도로 돌아왔다”고 평가한 것 등은 그간의 분위기를 대변한다.
이날 판결로 국면 전환의 호기를 잡은 야당은 적극적인 ‘공세모드’로 전환하는 분위기다. 1,2심 판결이 엇갈린 상황에서 대법원의 최종심이 기다리고 있는 만큼 내년 총선과 차기 대선을 의식한다면 지난 대선의 부당성에 확실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새정치연합 국정원 대선 개입 무죄공작저지특위는 2심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죄인은 감옥으로’라는 지극히 일반적인 상식을 확인해준 판결”이라며 “이제야 절반의 진실만이 드러났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특위는 한발 더 나아가 “사법부는 이번 유죄판결을 계기로 아직도 장막에 가려져 있는 국정원 관련 사건의 남은 진실을 밝혀 국기를 문란케 한 세력의 만행을 국민 앞에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을 규탄하며 45일 동안 노숙투쟁을 벌였던 김한길 전 공동대표도 개인성명을 통해 “한마디로 만시지탄이지만 그나마 다행”이라며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과 같이 민주주의의 근본을 뒤흔들고 대선 결과의 정당성에 큰 상처를 내는 국기문란 사태가 다시는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야권 일각에선 아직 최종심이 남아 있는 만큼 궁지에 처한 여당이 대선 불복 프레임을 들고 나올 경우 이에 말려들 수 있다는 신중론도 제기됐다.
野, 朴 대통령과 MB 동시에 정조준
새정치연합의 공세는 전ㆍ현 정권 모두에 맞춰져 있다. 이전에는 대선 개입 의혹의 초점을 이명박 전 대통령에 집중했어야 했다는 내부의 자책도 있었지만, 현 정부 들어 박근혜 대통령이 어정쩡한 태도를 취해왔을 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 본인이 최대의 수혜자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를 반영하듯 유 대변인은 “국가기관이 불법으로 지난 대선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법적으로 인정된 만큼 이 전 대통령은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한 뒤 “특히 박 대통령 역시 국정원 대선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내에선 최근 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국면과 맞물려 공세의 초점을 박 대통령에게 집중하는 것이 대선의 정당성 훼손 문제를 부각시키는데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국정원 대선 개입 무죄공작저지특위도 “사건 초기에는 ‘그런 일 없다’고 하다가 증거가 나오자 ‘개인적 일탈’로 치부하고, 나중에 기소되니까 ‘재판 결과를 보자’고 했던 박 대통령이 직접 국민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의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문 대표는 2심 판결 직후 별다른 언급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취임 일성으로 박근혜정부에 대한 ‘조건부 전면전’을 선포했던 만큼 향후 추이를 보면서 이번 판결을 대여 공세의 지렛대로 삼을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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