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 희망" 1주일 만에 IS 측 접근… 신앙·충성도 검증 후 개인정보 요구
"비밀계좌로 입금할 것" 감언이설, 당국 제재 없어… 제2의 김군 우려
지난달 10일 터키와 시리아 접경지역에서 실종된 김모(18)군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김군의 터키행이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IS(이슬람국가)에 자발적으로 가담하기 위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한국도 테러 유혹의 안전지대가 아님이 드러난 것이다. 당시 제기됐던 여러 궁금증 중 하나는 집에서 은둔 중이었던 10대 청소년이 어떻게 수천㎞ 떨어진 테러단체의 소굴에 간단히 입성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한국일보 특별취재팀은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10대로 위장한 뒤 김군이 밟았던 IS 가입 경로를 따라가 봤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정부 당국의 온갖 대책에도 IS 접촉은 너무나 쉬웠고, 그들의 포섭 과정은 김군 사례와 놀라우리만치 유사했다. IS 측 인사(혹은 추종자)들은 때론 회유를, 때론 협박을 일삼으며 집요하게 가입을 설득했다.
취재팀은 지난달 19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위터에 m*******, i********라는 2개의 계정을 개설하고, IS 활동을 찬양하는 트위터 내용을 리트윗하거나 IS 가입 방법을 묻는 글을 6차례에 걸쳐 올렸다. 김군도 지난해 9~10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IS 추종자들에게 IS 합류 희망 의사와 가입 방법을 수십 차례 문의했다. 일주일여가 지난 같은 달 28일 마침내 한 남성이 관심을 보여 왔다. 아이디 mo******의 이 남성은 “Do you really want to join ISIS?(진정 ISIS에 가입하고 싶은가)”라며 접근한 뒤 왜 IS에 관심이 있는지 캐묻고, 자세한 내용은 비밀메신저 ‘슈어스폿’으로 대화하자고 링크를 남긴 후 자취를 감췄다.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라는 뜻의 ISIS는 지난해 6월 IS로 바뀌기 전의 명칭이며 일부 국가는 아직도 ISIS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취재팀은 이날부터 이달 8일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슈어스폿으로 IS 관계자와 대화를 나눴다. IS가 테러 회유 수단으로 슈어스폿을 점 찍은 이유도 알 만했다. 실제 슈어스폿을 사용해 보니 대화가 진행되면 초기 내용을 다시 보는 것이 불가능했고, 상세 내용을 저장하는 기능도 작동되지 않았다. 실종된 김군도 트위터로 시작해 슈어스폿으로 IS 측과의 소통 채널을 옮겼다. 흔적이 남지 않는 탓에 현재까지 슈어스폿에서 오간 김군의 대화 내용은 알려진 것이 없다.
IS의 조직원 모집 과정은 단계적이고 치밀했다. 1단계로 IS에 대한 이해도와 이슬람교에 대한 신앙심을 테스트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취재팀은 서울에 사는 15세 청소년, 러시아 빼제르부르크에 거주하는 17세 유학생으로 가장했다. 코드네임 알리(Ali)는 ‘어디에 있는 이슬람 사원에 다니느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IS 최고지도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느냐’ 등을 아랍어를 섞어 물은 뒤 기자가 알아듣지 못하자 ‘지금 당장 코란 구절을 낭독해 보라’고 다그쳤다. ‘알라를 위해 싸워라. 그러면 신은 모든 것을 알아주실 것이다(코란 2:244)’라는 구절을 말하자 알리는 ‘매우 훌륭하다’며 흡족해 했다.
그 다음 검증은 IS에 가입하려는 이유에 집중됐다. 취재팀이 한국과 서구 사회에 대한 강한 반감을 표하니 그는 ‘당신은 내가 묻는 질문에 모든 것을 솔직하게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질문 전 ‘Swear you will jihad for Muslim in front of the great Allah(무슬림을 위한 거룩한 전쟁에 나가 싸울 것을 위대한 알라신 앞에 맹세하라)’라고 말한 뒤 복명복창을 요구하기도 했다.
IS 관계자는 충성도 체크가 끝났다고 판단하자 개인정보를 꼼꼼히 확인하기 시작했다. 여권에 기재된 이름과 나이, 사는 곳, 하는 일 등이 모두 점검 대상이 됐다. 위치 검색을 하려는 듯 사는 곳에 대해서는 영문과 한글 표기를 함께 요청했다. 가짜 정보를 건네자 친구는 물론 가족에게도 비밀 엄수를 끊임없이 당부했다. 또 시리아행 비행기표를 살 돈이 있는지 여부와 여권번호, 이메일 주소도 물었다.
4일엔 아메드(Ahmed)라는 코드네임을 쓰는 인물이 갑자기 등장했다. 중간 접선책으로 추정되는 이 관계자의 검증은 강도를 한층 더했다. 아메드는 “시리아 국경을 넘기 위한 마지막 단계”라고 설명했다. 일종의 ‘서류작업(paperwork)’이라고 표현한 검증 항목에는 생년월일, 휴대폰 번호, 출신학교, 부모 이름 등의 정보가 추가됐다. 취재팀이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기 꺼려하자 ‘비밀 은행계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 그 계좌에 돈을 넣어줄 것’이라고 설득했다.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비자 발급을 위해 부모의 이름과 나이 직업 정보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IS의 치밀함은 여권 정보를 조회하는 과정에서 확실히 각인됐다. 취재팀이 가짜 여권번호를 알려주니 이틀 뒤 아메드는 번호에 문제가 있다며 다시 확인할 것을 요구했다. IS가 여권 정보를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답변을 미루자 ‘당신은 진정한 전사다’ ‘시리아에 오면 다양한 국적의 원하는 여자를 고를 수 있다’ 등 다양한 회유가 뒤따랐다.
취재팀을 시종일관 형제라 부르던 알리는 이윽고 ‘이제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됐다’면서 자신은 인도네시아대에 다니는 21세 학생이라고 신원을 처음 공개했다. 그는 현재 IS를 지원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AK47 같은 총이나 다른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느냐’ 등 취재팀이 IS 대원으로 거의 받아들여진 것처럼 느끼게 하는 질문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들은 친근함 속에서도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자신들이 보낸 메시지를 수시로 삭제하는가 하면 대화를 끝낼 때마다 ‘비밀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위터에 남긴 슈어스폿 초대 링크와 글도 없앴다. 질문에 답변이 뜸하면 협박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러시아를 배경으로 얼굴 사진을 보내라’는 요구에 한동안 응하지 않자 ‘If you don't answer now, we will start to find you and kill you(당장 답장하지 않으면 당신을 찾아 죽이겠다)’고 겁을 줬다.
취재팀이 20일 가까이 IS 측과 꾸준히 접촉하는 동안 당국의 제재나 조치는 없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달 22일 IS의 조직원 모집 관련 게시물 접속을 차단하기로 했지만 김군처럼 은밀히 테러단체와 접촉을 시도할 경우 관리ㆍ감독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대응 체계라면 제2, 제3의 김군이 출현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셈이다.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정부에서 사이트 몇 개를 차단하고 관련 게시물을 삭제하는 것만으로 국제무장단체의 회유 공세를 감당하기는 역부족”이라며 “가입 의사를 표하며 적극적으로 테러조직과 접촉하는 인물을 조사할 수 있는 테러방지법 차원의 포괄적인 법제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soci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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