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마지막 날인 섣달 그믐날을 한자로 제일(除日), 또는 세모(歲暮)라고 한다. 소세(小歲)라는 용어도 드물게 사용했다. 조선 초기 문신 김안로(金安老)의 ‘촌중서사(村中書事)’라는 시의 해설에 “한식(寒食) 하루 전날을 소한식(小寒食)이라고 하고, 제일(除日)을 소세라고 한다”는 말이 이런 경우이다. 홍만선(洪萬選)은 ‘산림경제(山林經濟)’의 ‘건제십이신길흉(建除十二神吉凶)’이란 글에서 “제일(除日)에는 출행(出行)하거나 관가에 글을 올리거나 문권(文券)을 만들거나 병을 치료하거나 나무를 심는 일은 해도 좋지만 관직을 구하거나 재물을 내가거나 이사하는 일은 해서 안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홍만선은 같은 책의 ‘의원을 찾아 병을 치료하면 좋은 날(求醫療病吉日)’이란 글에서 제일(除日)에는 병을 치료해도 좋지만 신미일(辛未日)에는 크게 꺼린다고 말했다. 신미일에 명의(名醫) 편작(扁鵲)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기 전 6세기경의 인물인 편작은 괵(?)나라 태자가 시궐(尸厥)에 걸려 모두 죽을 것으로 여겼지만 소생시켰고, 제 환공(齊桓公)의 안색만으로 병의 원인을 알아낸 신의(神醫)이다.
옛 사람들은 섣달 그믐밤을 지새면서 한 해를 반성하고 새해를 맞이했다. 조선 중기 시인 간이(簡易) 최립(崔?)은 “섣달그믐 지새는 술은 모름지기 초주와 백주라네(小歲觴須椒柏?)”라는 싯구를 남겼는데, 산초의 꽃이나 열매로 담아서 정월 초하루에 집안 어른에게 올리는 술이 초주(椒酒)이고, 측백나무 잎으로 만든 술이 백주(柏酒)이다. 새해 첫날 마시는 이런 술을 수주(壽酒)라고 하는데 장수를 비는 뜻이다. 수주(壽酒)를 세주(歲酒)라고도 하는데, 조선의 세주로는 도소주(屠蘇酒)가 유명했다. 소(蘇)라는 악귀를 죽이는(屠) 술이란 뜻인데, 조선 선조 때 문신 심수경(沈守慶)의 ‘견한잡록(遣閑雜錄)’에는 “설날 아침에 도소주를 마시는 것이 옛 풍습인데, 젊은이가 먼저 마시고 노인이 뒤에 마신다.”고 적고 있다.
새해 첫날을 원단(元旦)이라고 한다. 새해 처음 뜨는 해(旦)를 말한다. 제사를 마치고 나누어 마시는 술이나 음식을 음복(飮福)이라고 한다. 글자 그대로 복을 먹는다는 뜻으로서 조상들이 복을 내려 주리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중국의 여러 고전과 사서(史書)에서 음복의 용례를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우리 선조들이 만든 용어일 것이다. 새해 첫날 나누는 인사가 덕담(德談)인데, ‘구당서(舊唐書)’ ‘신라조’에, “신라에서는 새해 첫날(元日)을 중요하게 여겨서 서로 축하한다.”는 구절이 있는데서 새해 덕담의 유래가 오래임을 알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집에서는 설날을 지내는 과세(過歲)가 큰 걱정이었다. 그래서 가난한 친지나 지인들에게 미리 음식거리 등을 보내는 것을 세찬(歲饌)이라고 한다. 임금도 대신(大臣)이나 종척(宗戚:국왕의 친척) 등에게 세찬을 보냈는데 때로는 땔감인 시탄(柴炭)도 함께 보냈다. 세찬을 보내는 것을 새해를 맞이하는 예의라는 뜻에서 세의(歲儀)라고 한다. 새해 설날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음식도 세찬이라고 한다. 조선 헌종 무렵 홍석모(洪錫謨)가 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는 “시절 음식을 만들어두었다가 찾아온 손님들을 대접하는 것을 세찬(歲饌)이라 하고, 술을 세주(歲酒)라고 한다”고 전하고 있다. 세찬의 대표는 역시 떡국(餠湯)인데, ‘동국세시기’는 ‘흰떡(白餠)을 동전같이 썰어서 장국에다 넣고 쇠고기 또는 꿩고기를 넣어 끓인 다음 후추 가루를 친 것’이라며 ‘떡국으로 제사도 지내고 손님도 대접하므로 세찬으로서 없어서는 안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조선 후기의 명재(明齋) 윤증(尹拯)은 ‘아들 행교(行敎)에게 보낸다’는 편지에서, “안산(安山)의 윤 감역(尹監役) 숙부께 서울의 인편을 통해서 세찬을 보내드리면서 편지로 정조(正朝)의 제수(祭需) 물품을 보내고 싶었지만 말을 빌리기가 너무 어려워서 마침내 성의를 표하지 못했으니 한식 때는 인마(人馬)를 보내달라는 뜻으로 말씀드려라”는 내용이 있다. 인마를 구하지 못해 제수를 못 보냈다는 내용으로서 현재의 택배 회사들처럼 이때가 조선의 인마가 아주 바쁜 때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 ‘백결 선생(百結先生) 열전’에는 가난한 집의 슬픈 제야(除夜) 풍경이 담겨 있다. 백결의 부인이 “다른 집에는 모두 곡식이 있어서 방아를 찧는데 우리만 없으니 어떻게 졸세(卒歲:과세)하겠습니까?”라고 한탄하자 백결선생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면서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달려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이라면서 “내가 그대를 위해서 방아 찧는 소리로 위로해주겠소”라면서 거문고로 방아 찧는 소리를 연주했다. 이 연주가 바로 대악(?樂)이다. 사회 어느 한 구석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는 상황에서 맞는 설날이지만 백결선생 같은 이웃을 돌아보는 마음만은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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