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았다니까요. 눈시울을 붉혔을 뿐인데. 옆에서 이완구 총리가 손수건을 꺼내 눈물 흘리니까 나까지 그냥 울어버린 게 됐어요.”
며칠 전 만난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지난주 여의도 최고의 화제의 장면으로 꼽힌 이완구 국무총리와 ‘눈물상봉’에 대해 이렇게 해명했습니다. 25일 이완구 총리가 우윤근 원내대표를 찾았을 때 바로 옆에 있었던 서영교 원내대변인도 기자에게 “울지는 않으셨어요”라고 확인했는데요.
우 원내대표는 눈물상봉 때문에 곤란함을 겪었다며 울지 않았다고 거듭 말했습니다. 우 원내대표가 어렵사리 청문회를 통과하고 자신을 찾은 이완구 총리를 향해 눈시울을 붉혔을 때 당 안팎에서는 “아무리 친해도 문제투성이 총리를 저렇게 반기면 인사 청문회 때 사퇴하라고 했던 의원들은 뭐가 되느냐”며 볼멘 소리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반면 두 사람이 부둥켜 안고 어깨 동무하면서 보였던 ‘브로맨스(브라더와 로맨스의 합성어)’에 대해 “서로 으르렁 거리기만 하는 상대당 대표를 진심으로 반기는 모습이 인간적”이라는 얘기도 많습니다.
두 사람은 얼마 전까지 여당과 제1야당 원내대표로 그 어떤 대표들보다 호흡이 잘 맞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우 원내대표는 자신을 찾아 온 이 총리를 옆에 두고 먼저 인사청문회 당시 이 총리 후보를 몰아붙였던 일을 떠올리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내 입장이 그래서. 그러나 내용이 만만치가 않아서”라며 “야당대표가 어렵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우 원내대표는 이완구 총리를 향해 “총리보다는 이 방에서 늘 대화를 했듯 제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한 여당의 파트너였습니다”며 “여당의 비판에 귀 기울이는 총리가 되시길 빕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우 원내대표의 말을 듣던 중 갑자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던 이 총리도 “눈물을 비치시니까 저도 모르게”라며 “두 사람의 깊은 우정 오래오래 깊이 간직하면서 여야 어우러지라는 말씀 깊이 새기겠습니다”라고 화답했습니다. 두 중년 남성이 쓰기에는 어색한 ‘우정’이라는 진한 단어까지 써가며 서로에 애틋함을 보인 두 사람의 대화가 오가면서 분위기는 숙연해졌죠.
우 원내대표에게 이 총리와 브로맨스의 이유를 물었더니, “세월호 특별법 협상 과정에서 나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많이 배려해 줬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우 원내대표는 지난해 10월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이종걸 의원을 이기고 경선에서 승리하면서 원내대표에 올랐는데요.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세월호 특별법 협상 등에서 당내 비판 여론을 못 견디고 사퇴한 후 당이 큰 위기에 있었던 터라 우 원내대표로서는 당 위기를 수습해야 했고, 특히나 세월호법 정국에서 특별법 협상을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습니다. 때문에 여당 협상 파트너인 당시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우 원내대표는 그 과정에서 파트너인 이완구 대표에 대한 상당한 신뢰를 쌓게 됐다고 하는데요. 무작정 자신의 입장만 밀어붙이기보다 상대방 의견을 들으려 애쓰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속과 겉이 다른 모습을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고도 했습니다.
그런 이 대표가 총리 후보가 되고 인사청문회에서 갖가지 문제점들이 드러나면서 결국 ‘사퇴해야 한다’며 공격 해야 하는 상황까지 처했던 것이죠. 당시 이완구 총리 후보자 측은 몇 가지 문제에 대한 비판이나 지적까지는 달게 받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야당 측에서 사퇴 카드를 꺼냈을 때는 상당히 당황했다는 후문입니다. 우 원내대표는 “김재원 원내 수석부대표 등도 사퇴카드는 좀 지나친 것 아니냐고 했지만 원내대표로서 입장이 있다고 얘기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무겁고 불편했던 것이죠.
이완구-우윤근 두 사람의 보로맨스를 바라보면서 여당, 야당의 원내대표들의 바람직한 관계는 무엇일까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만나기 싫어도 만나서 뭔가를 논의, 협의해야 하고 당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더 많은 것을 얻고 덜 잃어야 하고 그러려면 마음 속에 있는 말과 다른 말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죠. 결국 서로 주고 받아야 하는 ‘협상’을 해야 하는 두 사람의 관계.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가까이 할 수도 멀리할 수도 없는 것이죠. 사이 좋다고 나쁠 게 없는 사람 관계지만 적어도 정치인들은 나중에 어떤 인연으로 어떤 관계로 만나게 될지 모르니까요.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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