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옛날에 같이 찍은 사진부터 관련성 있는 것을 사방에서 찾고 있다고 해요. 차라리 내가 먼저 그 사람에 대해 아는 사실을 공개하는 게 낫다고 봤죠. 또 종북몰이가 시작될 텐데 답답하네요.”
며칠 전 만난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에게 5일 아침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공격했던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씨에 대한 얘기를 기자들 앞에서 먼저 꺼낸 이유를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유 대변인은 김씨가 대학(성균관대) 선배이고, 그가 대학 때부터 문화운동을 주로 해서 특별한 교류는 없었으며, 자신이 민주동문회 사무국장을 맡아 일할 때 알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김씨가 종종 한가지에 집중하면 돌발행동(분신 시도 등)을 해서 주변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걱정을 하면서도 신뢰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여겨왔다고 했습니다. 김씨는 독도 관련 이슈로 활동을 하면서 국회의원들이나 대학 동문들을 찾아다니며 서명을 해달라거나 토론회 열자는 요구를 많이 했고 자기 뜻대로 안되면 말싸움은 물론이고 협박이나 폭언도 서슴지 않았다고 합니다.
유 대변인은 이렇게 밝혀야 하는 상황이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비단 유 대변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김씨와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관련 사실을 해명하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우상호 의원은 김씨가 2012년 국회 정론관에서 ‘독도 본적 갖기 운동’ 기자회견을 열 수 있게 도와주고 회견장에도 나란히 섰습니다. 지금 SNS 상에는 우 의원이 마치 김씨와 친분이 두텁고 ‘같은 편’인 것처럼 기정사실화하는 글과 사진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 의원은 “독도 문제로 기자회견을 한다기에 사용 신청을 대신 해준 것 뿐”이라며 답답해했습니다. (국회 정론관에서 일반인이 기자회견을 하려면 현역 국회의원이 사무처에 신청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우 의원은 “김씨가 나중에 회관에 찾아와 ‘왜 내 전화를 받지 않느냐’며 한 시간 가량 큰 소리로 항의하는 등 소란을 피웠다”며 “그 뒤로 더는 교류한 적이 없다”고 답답해했습니다.
김씨의 고교 1년 선배인 이개호 의원은 “의원회관으로 찾아온 적이 있고 동문회에서 만난 적도 있다”면서 “정치ㆍ외교 관련 발언을 하지는 않았지만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의원들 중에도 “보좌관이 행사 지원 요청을 거절했다가 폭언과 욕설을 들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앞에 와서 대통령을 만나게 해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전해듣기로는 정신병원 입원 전력도 있다더라”는 등의 말을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유 대변인은 “김씨는 새정치연합의 당원도 아니고 과거에 당적을 가진 적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강조했습니다.
한 야당 의원은 “여권이 또 한번 ‘종북 딱지 붙이기’를 시도할 것”이라며 “이번에도 참으로 답답하고 지리한 싸움을 해야 할 것 같다”고 걱정했습니다. 특히 다음달 3곳에서 국회의원을 뽑는 보궐선거가 예정돼 있기 때문에 여권이 ‘북풍’을 재연할 것이라며 우려하는 의원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걱정이 현실화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8일 김무성 대표를 수행해 리퍼트 대사 문병을 다녀온 박대출 새누리당 대변인은 곧바로 “지금은 새정치연합이 종북몰이 운운하며 역색깔론을 펼칠 때가 아니라 종북숙주에 대한 참회록을 쓸 때”라고 비난했습니다. 박 대변인은 “김기종씨가 어엿한 시민운동가로 행사할 수 있었던 건 야당 국회의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여러 차례 기자회견을 하는 등 야당 의원들과의 교류가 한 몫을 했다”고 주장한 뒤 “김씨는 국회 마이크를 잡고 반체제 주장을 펼치는, 일반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특혜를 받았다”고 야당을 몰아세웠습니다. 박 대변인은 이어 “야당이 종북세력과 손잡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사상 초유의 테러에 대해 해명할 부분이 있다”며 “김씨가 7차례나 방북하고 성공회대 외래교수를 지낸 것은 모두 야당이 집권하던 시기에 이뤄졌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간 충분히 겪어왔고 사건 직후부터 예상했기 때문인지 야당은 덤덤하게 받아들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표는 이날 오후 리퍼트 대사 문병 직후 “테러리즘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돼선 안 된다”며 “이 사건을 종북세력에 의한 것으로 (규정해) 정치에 악용하려 한다면 오히려 한미관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야권은 이번 사건을 ‘극단적 민족주의자’의 이상행동으로 보고 있지만, 어쨌든 ‘종북 딱지’는 야권에게 ‘약한 고리’임에 틀림없습니다. 실제 지난주 여론조사에서 새정치연합의 정당 지지도는 1주일 전에 비해 4.8%포인트 떨어진 28.1%로 4주만에 20%대로 하락했습니다.
야권에서는 앞으로 더 거세질 정부ㆍ여당의 종북 공세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두고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가만히 팔짱만 끼고 사그라들기를 기다리는 게 능사는 아니기 때문인데요, 이날 김성수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제1야당이 종북숙주이면 야당과 늘 국정을 놓고 대화하고 협상하는 자신들의 정체는 무엇이냐”며 “지지율이 떨어지고 선거가 다가오자 구시대적인 ‘막말 종북몰이’로 표를 얻어보려고 하는 건 매우 비겁한 정치행태”라고 반박했습니다.
머지 않아 국회 주변에는 벚꽃이 피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벚꽃 구경을 위해 몰려들 것입니다. 벚꽃 길 바로 옆 국회의사당 본관의 둥근 지붕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이 꽃을 볼 때처럼 기쁘고 좋아질 날은 언제 올까요. 또다시 국회에 우울한 그림자와 무거운 공기가 흐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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