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 51조 늘리겠다더니… 금융소득과세 사실상 실적 전무
세출 81조 줄이겠다더니… 경기부양 이유 SOC 지출 1조↑
아내로부터 살림을 넘겨받은 A씨가 주판알을 튕겼다. 부모님 용돈 인상, 아이들 학원 한두 개 더 보내기, 아내 수영 강습 등 아내와 달리 호기롭게 삶의 질 개선에 초점을 맞춘 지출 내역부터 짰다. “돈 나올 구멍이 있느냐”는 아내의 핀잔에 A씨는 “월급도 오를 것이고, 난방비나 전기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그간 누락됐던 쌈짓돈과 비상금까지 챙겨 수입으로 잡으면 문제 없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경기가 나빠져 A씨의 월급은 오르기는커녕 되레 깎였다. 이미 허리띠를 졸라맨 살림은 추가 절약을 할 여지가 좁았고, 자투리 동전수입까지 꼼꼼히 챙겼지만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반면 학원비 등은 예상보다 다달이 부담이 커졌다. A씨는 결국 가계부를 들여다보면서 어떤 지출을 줄일지, 누군가 나가 돈을 더 벌어 올 여지가 있는지 가족회의를 열기로 했다.
평범한 가정이라면 가계부가 펑크 날 경우 지출부터 줄이는 게 보통이다. 가족의 의견도 물어야 한다. 당장 들어오지도 않는 돈을 가정해 살림을 짜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가 가계부는 이런 상식들을 뛰어넘는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140개 국정과제 등 그간 내놓은 국민과의 약속을 빠짐없이 지키겠다고 만든 ‘공약가계부’는 수입도, 지출도 모두 엉망이 됐다.
8일 한국일보가 재정학회에 의뢰해 ‘박근혜 정부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재정지원 실천계획’(공약가계부)을 분석한 결과, 2년간 세입 확충(51조원)과 세출 절감(81조원) 목표 중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게 거의 없었다. 특히 세출의 경우 내용이 부실하거나 누락돼 사후 검증마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재정학회의 분석에 따르면 공약가계부상 세입 확충 목표의 경우 지하경제 양성화와 금융소득과세 강화는 실적이 전무했다. 그나마 비과세 및 감면 정비는 2년간 목표가 상대적으로 적어(2013년 1,000억원, 2014년 1조8,000억원) 목표 달성에 근접한 것으로 판단됐지만 향후 전망은 어둡다. 재정학회는 “2015년부터 비과세 및 감면 정비로 매년 5조원 가량 줄여야 하는데 지금까지의 세법개정 내용을 살펴보면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실제 지난해 세법개정에서 일몰 예정인 비과세 및 감면 항목 중 90% 정도가 다시 연장됐고, 없어진 만큼(7개) 새로 신설(6개)됐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국세청이 2013년 3조원 가량을 걷어들여 연간 목표(2조7,000억원)를 달성했다고 발표했지만 대부분 기존에 추진했던 내용이라 실적에 포함하면 안 된다는 게 재정학회의 입장이다. 재정학회는 “박근혜 정부가 새로 시도한 건 없고, 엉뚱한 숫자만 나열했다”며 “특히 세무조사를 통한 징수 실적은 거센 반발로 재판 결과에 따라 환급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소득과세 강화 역시 말뿐이었다는 게 재정학회의 평가다. 오히려 배당소득증대세제 도입에 따른 배당소득세율 인하로 앞으로 세수가 더 줄어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더 심각한 건 세출 절감이다. 지금까지 뭇매를 맞아온 건 주로 세입 확충 목표였지만, 재정학회 분석 결과 세출의 경우 절감은커녕 오히려 증가로 역주행 중이었다. 가장 금액이 큰 항목(5년간 11조6,000억원 절감)인 사회간접자본(SOC)은 올해 2조7,000억원을 줄이기로 했으나 경기부양을 이유로 1조1,000억원이 늘었고, 산업과 농업 분야도 절감 목표(각 1조3,000억원)와 반대로 증액됐다. 이러다 보니 공약가계부에서 약속했던 사업 중 아직 시행을 못하거나(고교 무상교육 등), 바뀐 것(기초노령연금)도 많다.
세출의 경우 정확한 판단 근거조차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익명을 원한 재정학회 회원은 “도입 첫 해에는 공을 들이더니 지난해에는 아예 손을 놓는 형국이라 분석을 하고 싶어도 마땅한 자료가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공약가계부 사업이 예산에 상당히 많이 포함된 것처럼 보이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일치하지 않는다”며 “정부 내에서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해 신성시하면서도 정작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쉬쉬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재정학회는 “공약가계부 개념 자체부터 바꾼 뒤 중장기적인 재정건전성을 공식적으로 검토를 해야 하고, 외부적인 시각에서도 사후 검증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는 “애초 의욕 과잉으로 불가능한 목표였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솔직히 털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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