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복지예산 116조원은 국가예산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돈이다. 정부정책의 최소 3분의 1은 국민들의 안정적 생활을 도모하는데 쓰여지고 있다는 얘기다. 얼마나 큰 금액인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116만명의 빈곤층들에게 연간 1억원씩 나눠줄 수 있는 돈이다. 당연히 국민들은 이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아직도 ‘송파 세 모녀 자살사건’이 일어나는 걸까. 또 쪽방촌이나 노숙자 등 사회의 어두운 구석은 왜 이렇게 많은 걸까.
그럼에도 올해 정부는 33조원의 적자예산을 편성하면서 부자노인들에게 기초연금을, 재벌 자녀들에게 무상급식을, 고소득 부부에 보육비를, 자발적으로 민영보험에 가입하는 고소득 환자들에게 건강보험의 본인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재정적자가 후세들의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증세를 해야겠지만, 그와 동시에 현재의 무상복지에 대한 세출 효과를 보다 면밀히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10년 지방선거의 무상급식으로부터 시작된 이른바 ‘무상복지 시리즈’는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정치권에 매표(賣票)의 수단으로 이용됐다. 무상복지에 따른 납세자들의 비용이나 사회 경제적 영향에 대해서는 모두 무관심했다. 온정주의에 따라 단순히 복지제도를 확대하거나 복지수준을 높이는 것은 선(善)이고 공평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치라고 착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초연금, 무상보육, 무상의료, 반값등록금 등 무상복지로 인하여 중산층이 주 수혜계층이 되었다. 그리고 이에 필요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하여 저소득층의 혜택을 줄이는 최악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어쩌면 우리는 1940년대 후반 이미 무상복지를 감행한 아르헨티나의 페로니즘(Peronism)이 낳은 절망의 역사를 답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복지 시스템 전반을 구조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령화와 저출산의 지속으로 현재와 같은 상황이 더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가 복지 수혜를 받아야 할지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복지 확대의 제1조건은 복지지출에 따라 저소득층에 대한 이전지출이 증가해서 소득격차가 축소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복지지출의 빈곤억제 효과가 직접적으로 입증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무상복지의 수혜대상은 거의 모두 비(非)빈곤층이다. 기초생활보장급여 수급자들은 정부로부터 이중의 혜택을 받는다고 기초연금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두 번째 조건은 복지제도가 수급자들의 근로유인을 높여서 빈곤탈출의 기회를 제공하고 장기적으로 중산층에 편입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의 잦은 불경기로 붕괴되어가는 중산층이 회복돼야 납세자가 늘고 상대적으로 복지지출에 대한 사회적 부담을 덜 수 있고 복지제도도 지속 가능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취약계층별, 수혜자 특성별 복지 확대이다. 개인의 빈곤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젊은 가정은 자녀 양육에 따른 빈곤 상태에 있을 수 있고, 고령가구는 재산은 있어도 현금소득이 없어서 빈곤 상태일 수 있다. 장애인 혹은 질병 가구의 경우, 상대적으로 병원비가 많이 들어서 빈곤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장기환자가 있는 가구는 거의 빈곤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성향이 강하다. 또 주택마련을 위한 저축이나 부채상환을 위한 이자지출이 많으면 넉넉하지 못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위에서 언급한 기준에 따라 복지시스템을 성과중심으로 재평가하고 혁신해야 한다. 복지서비스에 새로운 IT기술을 장착하여 복지서비스의 생산성을 높이면서 복지서비스의 단가를 낮추어야 한다. 그래야 페로니즘의 길에 들어서지 않는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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