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ㆍ빅 데이터 기술 결합
무인 자동차 양산으로 사고 줄면
자동차 보험ㆍ부품기업 심각한 타격
기술 발전 주도한 일부만 혜택
"노동시장 뿌리 흔들 임계점 눈앞"
시장 규모가 연간 1,750억달러(약 190조원)에 달하는 미국 자동차 보험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뭘까. 한국이라면 금리변동이나 사고율, 보험사기 등이겠지만 미국에서는 ‘무인ㆍ로봇 자동차’다.
미국 3대 보험회사 중 하나인 트래블러스는 최근 내놓은 실적보고서에서 정보기술(IT) 업계의 최강자 구글의 구상대로 5년 안에 로봇 자동차가 상용화되면 자동차 보험업계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로봇ㆍ무인 자동차에 내장된 사고 예방장치로 교통사고가 급감한다면, 인간 운전자들의 부주의 덕분에 돈을 벌어온 이 업계의 영업기반이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걱정은 자동차 부품업계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다. 시카고에 본사를 둔 대형 부품업체 LKQ사도 ‘로봇자동차 상용화→ 사고 감소→수리용 부품 수요 감소’의 연쇄 작용이 회사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로봇혁명은 최근 몇 년 사이 전세계 모든 사업장의 풍경을 확연히 바꿔놓고 있다. 호주의 대형 광산업체 리오 틴토가 작업 현장에서 트럭과 굴착기 운전기사를 퇴출시킨 게 대표적이다. 대신 무인 트럭과 굴착기가 철광석과 석탄을 캐고, 이 광물을 중국ㆍ한국으로 수출하기 위해 450㎞떨어진 항구로 옮기는 기차도 무인화시켰다.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의 어로프트 호텔에는 로봇 웨이터가 등장했다. 손님이 음식을 주문하거나 물건 배달을 요구하면, 로봇은 객실 문 앞까지 재빨리 달려가 노크 대신 전화로 도착했음을 알려준다.
인공지능과 ‘빅 데이터’ 기술이 결합되면서 최근에는 미국 사무직 업무의 상당수도 로봇에게 넘어갔다. 법률회사에서는 컴퓨터가 판례를 모아 변호사들의 공판 준비를 돕고, 증권회사에서는 로봇이 시황 자료를 작성한다. 자동차 판매업체는 인공지능 로봇이 온라인 광고를 제작하고, 은행 창구에서도 로봇 직원이 수많은 거래 중 자금세탁이 의심되는 걸 즉시 걸러내 금융당국에 보고하고 있다. 이들 모두 10년 전만 해도 로봇은 할 수 없는 일로 분류됐던 업무들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미국 정치권에서는 ‘로봇 노동자’문제가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금까지는 무역 자유화가 중산층 일자리와 소득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놓고 대권 주자들이 다퉜으나, 2016년에는 로봇 혁명이 미국 중산층 유권자들의 일자리를 잠식하는 문제에 더 관심이 모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계 1위의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가 지난달 12일 ‘기계의 시대ㆍ미래 일자리’를 주제로 학술 세미나를 개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브루킹스에 따르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미국 정책당국자와 경제학자들은 로봇 혁명의 부작용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산업혁명 이후 200여년간 기술 발전으로 승자와 패자가 엇갈렸지만,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궁극적으로는 국부를 늘리는 데 기여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이런 믿음은 2000년 이전까지는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1900년 미국인의 41%를 차지했던 농민이 2000년에는 2%로 떨어졌지만 농업 생산물은 훨씬 더 많이 늘었다. 농촌을 떠난 농민의 후손들은 도시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나 방사선 기술자 등의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고, 수입도 선대(先代)보다 많았다.
그러나 에릭 브린졸프슨 MIT대 교수는 브루킹스 세미나에서 “로봇혁명의 ‘장밋빛 미래’가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 구글이 무인 자동차를 내놓은 걸 본 뒤, 로봇혁명이 미국 노동시장을 뿌리째 흔드는 ‘임계시점’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걸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던 다양한 업무가 로봇 영역으로 넘어가면서 기업들은 더 많은 부를 창출하게 되겠지만, 실업자는 더 많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21세기 로봇혁명이 과거와 다른 이유는 변화의 규모와 속도가 너무 크고 빠르기 때문이다. 과거 기술발전은 특정 분야에만 한정돼 ‘일자리 감소’의 부정적 영향은 제한적이고 생산성 향상의 파급효과는 컸지만, 로봇ㆍ디지털 혁명은 경제의 전 분야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IT분야 컨설팅업체인 가트너사는 “로봇혁명으로 2025년까지 전체 직업 가운데 3분의1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지 메이슨대학의 타일러 코웬 교수도 “로봇공학의 발달은 미국 인구를 상위 10%와 나머지 90%로 양분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술발전의 흐름을 주도하고 쫓아갈 수 있는 10%는 고임금과 풍요로운 삶을 누리지만, 나머지 90%는 임금이 정체되거나 감소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심각한 것은 미국에 비해 한국의 로봇혁명 속도가 오히려 더욱 빠르다는 점이다. 세계적 경영자문 기업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는 “향후 10년간 세계 주요 공업국 가운데 한국에서 제조업 생산현장 인력의 로봇 대체가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세계에서 가장 빠른 로봇혁명으로 2025년까지 한국 제조업 경쟁력은 평균 33% 개선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 다음으로는 일본(25%), 캐나다(24%), 미국(22%) 등의 순으로 로봇의 인력 대체 효과가 높을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한국 경제에 ‘양날의 칼’일 수밖에 없다. 저출산ㆍ고령화에 따른 인력 감소와 생산성 저하를 극복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일 수도 있지만,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된 ‘중산층 감소’와 ‘고용없는 성장’을 심화시키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물론 일부에서는 로봇의 인간 노동력 대체 가능성이 여전히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설혹 그렇더라도 결국 장기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낼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같은 MIT대 소속이지만 브린졸프슨 교수와 의견이 다른 레오나드 교수는 “구글이 시도하는 무인 자동차의 성능을 정밀 분석한 결과, 복잡한 도심에서의 주행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평가했다. 그는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최초로 개발한 이후 여객기가 상용화되기까지 수 십년이 걸린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호주 ‘리오 틴토’사의 존 맥가프 기술담당 임원도 “운전자 일자리는 없어졌지만, 시스템 공학자 등의 일자리는 늘어났다”며 “로봇혁명은 결국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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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혁명 안전지대는… 레크리에이션 치료사ㆍ정신상담가ㆍ패션디자이너
현재 직업 중 로봇ㆍ인공지능 혁명에서 가장 안전한 분야는 어딜까. 또 미래에도 로봇에게 자리를 빼앗기지 않을 분야는 어딜까.
영국 옥스포드대 연구팀에 따르면 미국의 702개 직업에 대해 로봇 혹은 인공지능으로의 대체 가능성을 분석한 결과, 전체의 47% 가량이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직종별로는 운송ㆍ물류부문 종사자들의 위험이 가장 높았고, 생산직과 사무직 가운데서도 행정지원 분야 업무도 대체 가능성이 높았다.
연구팀은 702개 직업의 대체 가능성을 지수로 평가했는데, 개별 직종 중에서는 텔레마케터(0.99) 보험평가사(0.98) 현금 출납직원(0.97) 부동산 중개인(0.97) 등이 인공지능으로 충분히 대체 가능한 집단으로 분류됐다.
반면 예상대로 인간 특유의 창조성과 통찰력이 필요한 직업군은 미래 로봇ㆍ인공지능 혁명의 안전지대로 평가됐다. 특히 ‘레크리에이션 치료사’(0.0028)의 지수가 가장 낮았다. 또 정신상담가(0.0031), 치과의사(0.0044), 패션디자이너(0.0049) 및 주요 관리직 종사자도 로봇이 업무를 대리할 수 없는 직군으로 분류됐다.
연구팀은 연봉이 높을수록, 또 종사자들의 학업수준이 높은 직업일수록 대체 가능성이 낮았다고 밝혔다. 또 “연봉이 낮은 직업이더라도 로봇ㆍ인공지능이 대체하지 못하는 분야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이들 직종에 취업하려면 다른 사람보다는 창의성 면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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