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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급여 바뀌어도 '송파 세 모녀'엔 여전히 그림의 떡

입력
2015.03.10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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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수급 진입 벽 높기만, 신청자 절반 이상 대상서 탈락

정부, 빈곤완화 정책 실효성은… "재정 투입 확대 등 근본 대책부터"

서울 은평구의 한 고시원에서 혼자 살고 있는 김근호(80) 할아버지는 여든의 나이에도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매달 25만원의 방세를 내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노인의 경제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만든 ‘시니어클럽’을 통해서다. 김 할아버지의 수입은 일해서 번 20만원과 기초연금 20만원을 합한 40만원. 그마저도 일할 수 있는 기한이 1년 중 9개월로 정해져 있어 3개월 동안은 방세를 낼 수도 없는 형편이다. 결국 김 할아버지는 지난 겨울을 나기 위해 3개월 동안 매달 40만9,000원을 지급받을 수 있는 긴급지원서비스를 신청했다. 긴급지원 대상자가 돼 한숨을 돌렸지만 그는 “(기초생활수급자) 조건이 까다롭고 어떤 경우에 수급자가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해주지 않으니 답답했다”고 말했다.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려운 노인이나 생계를 꾸려가기 힘든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만들어진 지 15년이 됐지만,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2013년 기초생활수급자는 135만1,000명(전국민의 2.6%)으로 역대 최저치였다. 2009년 156만9,000명(3.2%)을 정점으로 2010년 155만명(3.1%), 2011년 146만9,000명(2.9%), 2012년 139만4,000명(2.7%)로 해마다 줄고 있다.

현행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르면 자신의 소득이 최저생계비 미만이고,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어야만 수급자로 선정된다. 2013년 복지패널기초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신청자 중 절반 정도가 탈락했다. 본인의 소득이 기준보다 높아서 탈락한 사람은 10.1%인데 반해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이 기준보다 많아 탈락한 경우가 54.1%나 됐다. 김 할아버지의 경우도 경제 활동을 하는 아들이 있어 수급자가 되지 못했다.

수급자에서 탈락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부양의무자 조건이지만 가족으로부터 실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전북 군산시의 한부모 지원 시설에서 두 살짜리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임모(22)씨의 소득은 시급 5,500원의 식당 아르바이트를 해 번 돈이 전부다. 임씨는 어머니가 재혼한 이후 경제적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어머니와 새 아버지의 소득이 기준보다 많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했다. 임씨는 “아기가 아플 때 수중에 돈이 없어서 치료도 받지 못할 때가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부정수급자를 막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제도적 장치가 역설적으로 빈곤 사각지대의 인구를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부양의무자 조건뿐만 아니라 실제로 발생하지 않은 소득까지 소득으로 인정하는 추정소득과 소득으로 전환하기 어려운 재산까지 소득으로 산정하는 재산환산소득도 기초생활보장이 필요한 사람을 찾기보다는 부정수급을 막는 데만 급급해 기초생활 보장이라는 제도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보건복지정보개발원의 ‘기초생활보장제 부양의무자 특성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수급신청 후 탈락한 4,815가구 중 4,024가구(82.57%)가 소득 인정액이 50만원 미만임에도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탈락했는데, 부양의무자의 46%는 그 자신의 소득도 최저생계비 미만이었고 51%는 노인가구였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 가구도 늘었다. 1인 가구를 포함한 전 가구를 기준으로 소득이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절대빈곤 가구는 2013년 11.7%였고 중위소득의 50% 미만에 해당하는 상대적 빈곤 가구도 16.7%에 달했다. 2012년보다 각각 0.6%포인트, 0.4%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실제 기초생활수급 대상에 들지 못하는 차상위계층의 생활은 더 혹독하다. 차상위계층인 김 할아버지의 경우 정부미를 시가보다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고 푸드뱅크 지원도 받지만 실제 생활에는 크게 부족한 수준이다. 복지 급여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들에게 집중되면서 이들의 가처분소득이 오히려 차상위층보다 높아지는 역전현상도 발생한다. 2012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시장소득은 36만7,000원으로 차상위계층 중 비수급 빈곤층의 소득인 38만8,000원보다 낮았지만 복지 급여를 더한 경상소득은 수급자 87만5,000원, 차상위층 51만8,000원으로 수급자가 36만원 더 많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고 맞춤형 급여체계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오는 7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부양의무자의 부양능력 판정기준이 월소득 290만원에서 487만원으로 확대된다. 정부는 12만명이 더 수급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맞춤형 급여체계는 ‘모두 받거나 전혀 받지 못하는(All or Nothing)’ 기존의 급여방식을 급여별 특성과 상대적 빈곤율에 따라 세분화한다는 것으로, 생계급여는 중위소득 30% 이하, 의료급여는 40% 이하, 주거급여는 43% 이하, 교육급여는 50% 이하 가구에 지급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맞춤형 개편으로 수급자가 210만명으로 증가하고 현금으로 지원되는 급여액도 42만원에서 47만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정부의 개정안이 수급 대상의 충분한 증가에는 아주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주거급여 기준을 중위소득 43%까지 올려도 임차인에게는 지역별로 1~4급으로 나눈 기준임대료가 신설돼 4급은 오히려 기존에 받던 최대보장액보다 덜 받게 될 것”이라며 “송파 세 모녀의 경우 월세 50만원을 내던 전형적인 주거 빈곤층이었지만 기준이 바뀌어도 수급자에 포함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부양의무제 완화 방안으로 혜택을 보는 비율은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빈곤 사각지대에 놓였던 117만명 중 10%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참여연대는 지난달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를 통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모두 삭제해도 추가로 소요되는 예산은 6조8,000억원으로 우리나라 GDP의 0.4%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부양의무자기준을 완전히 폐지한 후에 소요되는 기초생활보장제의 1년 예산은 15조원 정도로 추산했다

결국 빈곤 사각지대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려면 투입되는 재정이 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문진영 서강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빈곤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추가소요재정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 있어야 사회안전망을 확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은 재정문제로 인해 수급 범위가 좁아지는 것인데 제한적인 복지지원예산에 수급자 규모와 선정기준을 맞추려다 보니 하나가 늘면 다른 하나가 줄어드는 형태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팀장도 “정부의 목표대로 증세 없는 세출 구조조정을 제대로 이뤄내든지 증세를 고민해야 하는데 정부는 부자감세와 기업감세 정상화 요구에는 묵묵부답”이라며 “빈곤완화 재정은 그대로 둔 채 복지를 확대한다는 건 노인 일자리를 2배로 늘린다면서 고용 개월 수를 줄이는 식의 조삼모사밖에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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