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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알바 취업..."개강 반갑지 않다"

입력
2015.03.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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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시오, 방학양반! 내가… 개강이라니!!’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학교 캠퍼스에 내걸린 개강맞이 현수막 문구에서 때 아닌 안타까움과 탄식이 묻어난다. 부상으로 인해 성불구자가 된 TV드라마 속 인물의 절망적인 대사까지 빌어 학생들은 눈 앞에 찾아 온 개강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으로 표현하고 있다. “개강이라니!” 방학에 대한 아쉬움이야 예나 지금이 다를 리 없겠지만, 그렇다고 개강이 결코 와서는 안될 절망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이유가 뭘까. “개강 해 봤자 지난 학기에 했던 고생을 4개월 동안 또 할 게 뻔하잖아요. 방학이나 얼른 또 했으면 좋겠어요”이화여대 4학년 문모씨는 개강을 맞는 심경을 이렇게 토로했다.

개강맞이 현수막이 학자금 대출 안내 바로 위에 자리잡고 있다.
개강맞이 현수막이 학자금 대출 안내 바로 위에 자리잡고 있다.

‘엄마, 이번 학기도 미안해…’

또 다른 개강맞이 현수막은 하필 학자금 대출 안내 바로 위에 자리를 잡고 있어 더 서글퍼 보인다. 등록금 마련하느라 등골이 휘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에 목이 메인다. “개강하면 교재비며 생활비며 돈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서강대학교 3학년 최모씨는 학업과 아르바이트, 취업준비에 벌써 지쳐간다고 하소연했다. 취업포털 알바몬이 지난달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10명 중 7명 꼴로 개강과 함께 무기력증이나 수면장애, 우울감 등이 찾아오는 새학기증후군을 겪고 있다. 개강에 대한 기대보다 부담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등록금과 생활비 등 경제적 압박을 가장 큰 부담으로 꼽았고 학점과 스펙 관리가 그 뒤를 이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개강맞이 현수막
한국외국어대학교 개강맞이 현수막

‘학교가 유일하게 미리 통보한 개강’

성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학사 제도의 변경이나 자치권에 대한 학교의 일방적인 결정과 통보 행태를 비꼬는 현수막도 눈에 띈다. 현수막을 만든 이 학교 4학년 김모씨는 “학교에 반발한다기 보다 교내의 총체적인 상황을 풍자하려는 의도”라고 밝혔다.

유명 영화 제목을 본 뜬‘님아 그 개. 강을 건너지 마오’처럼 현수막 속 패러디는 한 번 쓱 웃고 지날 수 있을 정도로 가볍게 개강을 표현하기도 한다. 한 유부남 연예인이 아내 아닌 다른 여성에게 보냈다는 야릇한 카톡 메시지를 본 떠 만든 ‘영어대 머리 속엔 개강, 과제, 연애, 성공적’이라는 현수막에선 학업과 연애의 동시 성공을 바라는 학생들의 속 마음도 읽을 수 있다. “걱정거리가 없진 않지만 개강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에 설레요. 왠지 신나는 일이 생길 것 같기도 하고요”이화여대 4학년 김모씨에게 개강은 아직 기회이자 희망이다.

이화여대 동아리 홍보 현수막
이화여대 동아리 홍보 현수막
비인기 동아리들은 조금이라도 신입생들의 눈길을 사로 잡기 위해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홍보물을 제작한다. 왼쪽 긴 홍보물부터 시계방향으로 고려대 댄스모임, 서울여대 RCY와 풍물패, 홍익대 봉사단체, 서울여대 홍보문화 동아리 포스터
비인기 동아리들은 조금이라도 신입생들의 눈길을 사로 잡기 위해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홍보물을 제작한다. 왼쪽 긴 홍보물부터 시계방향으로 고려대 댄스모임, 서울여대 RCY와 풍물패, 홍익대 봉사단체, 서울여대 홍보문화 동아리 포스터

‘괜.찮.아.요? 많.이.놀.랬.죠? 어.서.역.동.으.로.들.어.와.요’ 신입회원 모집에 나선 동아리의 홍보 현수막에는 유행어가 된 TV 시리즈 주인공의 대사에‘짤방’까지 곁들여져 있다. ‘오빠가 리드하면 넌 리듬에 몸을 맡겨’ 라는 댄스 동아리 현수막의 ‘남녀노소 누구든 환영’한다는 문구를 보면 ‘내 속의 열정’이 저절로 꿈틀거리는 것 같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재치 넘치는 홍보물에 이끌려 여러 동아리에 관심은 가지만 정작 신입생이 몰리는 곳은 따로 있다. ‘리크루팅, 차이를 만드는 전략적 선택’처럼 경영 마케팅, 비즈니스 전략 등 스펙이나 취업, 진로 관련 키워드에 충실한 학회들로 입회 자체도 쉽지 않다. 서류전형과 면접을 통해 신입회원을 선발하는데 경쟁률은 4:1에서 높게는 8:1 을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 학회들이 경쟁적으로 내건 대형 현수막에 비해 아이디어 회의까지 거쳐 만든 동아리 홍보물이 유난히 초라해 보이는 대학가의 개강 풍경이 씁쓸하다.

취업이 힘들어 지면서 이력서에 한 줄 더 할 수 있는 모임이 인기가 많다. 고려대 학생회관 외벽에 촘촘하게 걸린 진로 선택에 대한 학회들을 홍보하는 대형 현수막(왼쪽 사진)과 홍익대 학생회관 주변에 듬성 듬성 놓여진 동아리 홍보 포스터(오른쪽 사진)가 대조적이다.
취업이 힘들어 지면서 이력서에 한 줄 더 할 수 있는 모임이 인기가 많다. 고려대 학생회관 외벽에 촘촘하게 걸린 진로 선택에 대한 학회들을 홍보하는 대형 현수막(왼쪽 사진)과 홍익대 학생회관 주변에 듬성 듬성 놓여진 동아리 홍보 포스터(오른쪽 사진)가 대조적이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그래픽=강준구기자 widms4619@hk.co.kr

이명현 인턴기자(숙명여대 미디어학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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