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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랑 애 키우는 얘기로 카톡할 줄은" 동생도 깜짝

입력
2015.03.1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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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 반갑게 인사하고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이 늘었다. 휴직 후 제한된 생활반경 내에서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 하다 보면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최근엔 그 수가 급증(?)했다.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알게 된 같은 어린이집 학부형들이 대부분이다. 뒤에 알고 보니 같은 아파트 단지, 심지어 지붕을 공유하고 있는 같은 라인의 주민도 있다. 알고 지내는 이웃이 더 늘었다는 이야기다.

같은 동네 살았으되 사실상 처음 보는 사람들. 하지만 어색한 느낌은 별로 없다. 휴직 전에는 낮이든 밤이든 초면인 사람들과의 자리에는 으레 술이 등장했다. 알코올의 힘으로 그 묘한 어색함을 덜어보기 위해서였을 텐데, 이 사람들과는 그럴 필요가 없다.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커피 한잔이면 족하고 그것 없이도 이야기는 잘 통한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놓고 노심초사하는 동병상련의 처지 덕분이지 싶다.

세상 어머니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는 육아. 9개월의 경험상, 육아는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언어가 아닌가 싶다. 아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강아지의 주인은, 오며 가며 만나는 할머니는 이 아빠에게 항상 따뜻한 말 한마디를 빠뜨리지 않는다.
세상 어머니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는 육아. 9개월의 경험상, 육아는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언어가 아닌가 싶다. 아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강아지의 주인은, 오며 가며 만나는 할머니는 이 아빠에게 항상 따뜻한 말 한마디를 빠뜨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다른 육아 모임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 정신과의 정우열씨의 초대로 육아 아빠 모임에 나간 적이 있는데, 생면부지의 시커먼 남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이럭저럭 통했다. 그 후로도 만남을 지속하고 있는 아빠도 있다. 주말에만 잠시 애를 보는 아빠들이었다면 (볼 일도 없었겠지만)그렇게 이야기가 통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또 육아휴직 중인 동료 여기자들과의 모임 기억도 또렷하다. 육아고독에 휩싸였던 때라 그랬는지, 이 아빠는 그 날짜를 손꼽아 기다렸고, 두어 번 나가 수다를 떨다 왔다. 어린 아이 하나씩 끼고 모임을 갖는다는 게, 그 자리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대단히 유쾌한 시간이었다.

사실 이 아빠는 휴직 전까지만 해도 아줌마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은 기피했다. 근처만 가도 두통이 오는 듯 했다. 주변엔 아랑곳없이 시끌벅적하게 이야기하는 그들이 마냥 신기했고, 빨리 멀어지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래서 영원히 함께하기 힘들어 보이던 아줌마들이었는데, 요즘엔 그 무리에 섞여 아무렇지 않게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또 엘리베이터에서 어린 아기를 안고 있는 아기엄마에게 ‘요즘엔 잠 좀 주무시나요?’라는 말로 인사를 건네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아빠를 발견할 땐 ‘육아’라는 언어가 따로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지난해 가을 한 놀이공원에서 만난 육아 휴직 아빠들. 하는 일도, 가진 생각도 모두 다른 아빠들이었지만 육아를 직접 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가 이렇게 뭉치게 했다.
지난해 가을 한 놀이공원에서 만난 육아 휴직 아빠들. 하는 일도, 가진 생각도 모두 다른 아빠들이었지만 육아를 직접 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가 이렇게 뭉치게 했다.

가족간의 대화, 특히 여성가족(?)과의 대화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다. 그 ‘육아 언어’ 덕분으로 보고 있다. 아내는 물론이고 여동생, 사촌, 사촌형의 형수님들까지 이야기가 팍팍 통하니 더 자주 연락이 오간다. 미술 교사인 여동생은 “오빠랑 육아 이야기로 카톡을 할 줄이야. 그림책 한 권 같이 내자”며 동업을 제안했을 정도다. 온종일 청소, 설거지, 빨래 같은 기본적인 집안 일에 씻기고 먹이고 같이 놀고 재우는 일을 하면서,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알 길 없는 ‘육아의 세계’를 공유하고 있기에 생긴 변화다.

아이가 생긴 뒤 소원하던 부부 관계가 가까워졌다는 이야기도 여기저기서 종종 듣는다. 식구가 늘어난 뒤 집안 분위기가 달라지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데, 상대방을 이해 할 수 있는 접점이 그만큼 많아졌고, 대화의 양과 질도 전과 달라진 덕택이지 않을까 싶다. 실제 출입처에서 알게 된 한 지인은 삭막하다 못해 갈라 설 뻔하다 아이가 생긴 뒤 ‘지금보다 더 좋을 순 없다’가 됐다고 했을 정도다. 역시 육아에 팔을 걷어붙인 경우이고, 상대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는 이 변화를 책으로 묶어내도 여러 권 낼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행복지수를 어떻게 산출하는지 모르지만 대화 상대의 수,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의 양에 그것은 비례하지 않을까. 많이 배우고, 가능하면 많이 경험할수록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아들을 키우면서 새삼 느낀다.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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