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인연이란 게 멀리 도망갈 수 없어. 자기들끼리 뭉친다 해도 거기서 거기야. 천(千)-정(鄭)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어.” 신기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표정은 복잡했습니다. 아쉽지 않느냐고 묻자 뭐라 말할 입장이 아니라면서도 (천정배 전 의원에게) 전화는 한 통 하셨느냐고 하자 “전화는 무슨” 하면서 뜸을 들이다 결국 꺼낸 말이 ‘사람 인연’ 이었습니다. 함께 ‘천-신-정’ ‘열우당 삼총사’라 불렸던 정동영 전 의원에 이어 천정배 전 의원까지 당을 떠나 4ㆍ29재보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할 뜻을 밝혔습니다. 이제 신 의원 혼자 당에 남았습니다.
세 사람은 15대 국회 때 함께 입문해 16대 국회 때 새천년민주당에서 권노갑 전 의원을 비롯한 구 동교동계 원로들의 2선 후퇴를 주장하는 ‘정풍(整風)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혼자였다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빗대어 지기도 했습니다만 결국 이들은 해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당선 뒤에는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고,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생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을 제치고 152석으로 원내 1당이 되는데 큰 힘이 됐습니다. (정동영 당시 당 의장의 ‘노인 폄훼 발언’이 점수를 많이 깎아먹긴 했지만요.) 그리고 국회 개원 이후 세 사람은 당 의장(정동영), 상임중앙위원(신기남), 원내대표(천정배)를 맡아 당을 이끌다시피 했습니다. 이후 정 의장이 의장에서 물러나고 통일부 장관으로 입각하면서 신 의원이 의장직을 넘겨 받아 당을 이끌었습니다. 나중에 천 전 의원도 법무부 장관을 맡으며 입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삼총사는 차례로 쓴 맛을 봅니다. 정 전 의원이 200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하고, 신 의원은 이듬해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낙선했고 천 전 의원과 정 전 의원은 19대 총선에서 송파 을과 강남 을에 출마했다 나란히 낙선했습니다. 반면 신 의원은 홀로 당선됐죠.
그리고 지금 세 사람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게 됐습니다. 신 의원은 지난달 끝난 당대표 경선의 선거관리위원장을 맡는 등 여전히 당내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 정 전 의원은 새로운 진보세력 결집을 표방한 ‘국민모임’에 합류, 인재영입위원장을 맡는 등 간판 역할을 하고 있고, 천 전 의원은 무소속으로 다음달 재보선에 나섭니다. 특히 ‘천-정’ 두 사람이 서로 손을 잡고 재보선에서 신 의원이 속해 있는 새정치민주연합과 일전을 치르겠다는 소식이 들리니 신 의원의 마음은 더욱 착잡해 지는 것 같았습니다.
신 의원은 “천신정 옛날 이야기 좀 쓰지마. 그게 언제 이야기인데”라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정치인이니 자기 살길은 자기가 하는 거지”라며 애써 덤덤해 했습니다. 사람 인연이라는 게 멀리 도망갈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비록 두 사람이 당을 뛰쳐나갔지만 멀리 가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국 우리는 한 편’이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그러면서 “천정의 효과가 있을 지는 의문”이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경쟁자가 된 두 사람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한 ‘기선 제압’ 용 엄포로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그 보다는 두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말로 들렸습니다.
다음달 재보선에서 광주 서을 지역구의 선거 결과는 신기남 의원의 새정치연합이나 천정배- 정동영 두 사람에게나 매우 중요합니다. 문재인 대표 출범 후 첫 선거에서 새정치연합의 존립 기반인 호남의 선거에서 진다면 상승세를 타고 있는 문 대표나 새정치연합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습니다. 반면 천-정 두 사람은 선거에서 이긴다면 새정치연합의 견제 세력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겠지만 질 경우 정치권에서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습니다. 정면 승부인 셈이죠. 그 승부를 바라보는 신 의원은 누구보다 착잡할 수밖에 없겠죠.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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