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527조원, 국내총생산(GDP) 대비 35%에 달한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외국과 비교해 아직 국가채무가 안정적인 수준이라는 말만 되풀이 한다. 하지만 숨겨진 공기업 부채가 엄청난 상황에서 우리 재정의 리스크를 다른 나라와 수평 비교하는 것은 현실을 왜곡할 수 있다.
갈수록 늘어가는 나라 빚을 안정적으로 관리하자면 증세 등 세입 측면에서의 보완책이 필요한 동시에 예산지출 측면에서의 낭비적 요소를 철저히 줄이는 것이 병행돼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산의 구조조정이다. 예산의 구조를 보면 여전히 사회간접자본(SOC)이나 연구개발(R&D) 등 경제ㆍ산업 분야의 예산 배정이 과다하다.
정부의 SOC 예산지원에 의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건설산업 비중은 다른 나라에 비하여 지나치게 비대하다. 경제가 고속성장단계를 넘어서서 고도화 단계에 들어가기 위하여는 구조조정이 필요한 분야이다.
특히 주목해 봐야 할 점은 이 분야의 예산은 또 대기업이 수주하여 하청기업에게 맡기면서 수주액의 상당한 부분을 취하는 형태로 사업이 진행되는 것이 보통이라서 소위 쪽지예산이 횡행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지역구 예산 혹은 지역구 사업이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지역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는 투입예산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쪽지예산은 국가적 이익을 해쳐가면서 지역예산을 챙기는 것이다.
올해도 이 분야 예산 규모는 여전히 크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당초 계획과는 다른 것이다. 2013~201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SOC예산을 단계적으로 축소하여 2017년 20조 이하, 2015년의 경우는 22조원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 2015년 예산은 24조4,000억원으로 이 계획과는 10% 넘게 차이가 난다.
SOC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것도 문제다. 정부는 오히려 예비타당성조사 대상기준을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에서 1,000억원 이상으로 완화하는 역주행을 하고 있다. 조사자체가 예비타당성조사 기관의 수익사업이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우려도 크다.
R&D 분야의 예산지출은 효율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민간기업에게 집행을 위임하는 예산도 많아서 지출과정에서 부정한 사용의 사례가 많다. 우리나라는 GDP 대비 전체 R&D 투자비중이 매우 높은 나라로서 이스라엘에 이어 2위다. 주요 투자 대상은 휴대폰이나 반도체, 이동통신, 의료기기, 빅데이터 등 바로 사업화가 가능할 뿐 아니라 주로 대기업이 진출하는 분야다. “거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대기업이 바로 사업화가 가능한 분야에 대해 수행하는 연구투자에 왜 정부의 예산이 투입돼야 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기업분석업체 재벌닷컴에 따르면 10대 대기업 현금 보유액이 2014년 9월말 기준 125조 4,100억원에 이른다. 수익성이 있는 분야라면 스스로의 자금으로 충분하게 연구투자를 수행할 수 있는 대기업에 정부가 R&D 예산에서 수조원을 더 지원한다고 기업의 기술수준과 경쟁력이 더 향상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 금액은 다른 예산 분야에서 훨씬 더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R&D 분야에서 정부의 할 일은 기초연구와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다. 창조경제, R&D에 대한 지원 등은 인적자원의 개발과 관련이 되는데, 이는 단기간에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조급증은 자원(혈세)의 낭비를 부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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