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인 중앙부처 A사무관은 부인의 출산을 앞두고 요즘 고민이 많습니다. 부인이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어 육아휴직을 하면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인데요. A사무관의 소속 부처가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부인이 서울 일자리를 포기하고 대전에 내려와 어렵게 다시 일자리를 얻은 탓에 A사무관으로선 부인에게 다시 한번 양보를 요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는 “그렇다고 서울에 사시는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는 것도 여의치 않다”고 한숨을 쉽니다.
민간 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은 A사무관에게 “그래도 공무원은 좀 더 마음 편하게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그는 “현실을 모르는 얘기”라고 잘라 말합니다. 중앙부처에서, 특히 사무관(5급) 이상 남성 공무원으로서 육아휴직을 감행하는 것은 ‘나는 승진을 포기한다’는 선언이나 다름 없다는 게 대체적 분위기입니다. ‘관피아’ 논란 등으로 많은 공무원들이 가능한 한 정년을 채우려고 하면서 만성적 승진 적체가 더 심해진 상황. 이 와중에 육아휴직을 하면 육아휴직을 하지 않은 동료들과의 승진 경쟁에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남성 육아휴직 제도가 생긴 지 수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5급 이상 공무원이 육아휴직을 신청한 사례가 드문 것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그저 막연한 불안감 아니겠냐고요? 실제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정부부처 공무원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육아휴직 직전보다 성과급 등급이 오른 경우는 11.7%에 불과했지만 낮아진 경우는 47.5%나 됐다고 합니다. 반면 육아휴직 비경험자는 26.9%가 성과급 등급이 올랐고 낮아진 경우는 23.1%에 그쳤다고 하네요. 이와 관련, 인사 권한이 있는 중앙부처의 한 국장급 인사는 “육아휴직자에게 일부러 불이익을 주려고 하지는 않지만 승진 자리가 나면 경력 단절 없이 쭉 일해 실력을 입증한 사람에게 먼저 마음이 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남성 공무원의 육아 휴직기간을 여성 공무원처럼 3년(현행 1년)으로 늘리는 법안이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당장은 ‘그림의 떡’에 불과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각에선 아이가 있는 공무원에게 의무적으로 육아휴직을 쓰게 하자는 의견도 나옵니다. 남성 육아휴직을 장려하는 분위기도 사회에 퍼뜨릴 수 있어 장점이 많다는 겁니다.
그런데 기자가 만난 남성 공무원들은 대체로 “그건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칩니다. 유치원생 아들이 있는 B서기관은 “아이가 예쁜 건 맞다. 하지만 가끔 보는 것과 본격적인 육아는 차원이 다르다”면서 “와이프에게는 비밀이지만, 육아 부담을 피하려 일부러 일을 만들어 주말에 출근하기도 한다”고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물론 불이익을 받지 않는 예외도 있습니다. 함께 해외 연수를 가려는 공무원 부부가 동시에 해외 연수 목적으로 휴직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하는데요. 이럴 때 부인은 해외 연수 목적의 휴직을, 남편은 육아휴직을 한다고 합니다. 이럴 땐 남성 육아휴직도 허용되는 분위기라고 하네요.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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