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중고에 체감 경기 최악, 루블화 폭락으로 금융권 부담까지
주민 91%, 그래도 러 귀속 찬성… 다양한 기념행사로 1주년 자축
러시아, 예산 지원에 총력… 2020년까지 12조5000억원 투입
18일은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병합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크림 사태’로 불리며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이 사건은 민족주의 성향의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 러시아 성향의 분리주의 반군간 유혈 사태로 시작해 정부군을 지지한 서방국들과 반군을 거들었던 러시아간 위기로 번지면서 ‘제2의 냉전’의 시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현재 크림은 우크라이나와 관계를 단절하고 러시아와 통합이 진행 중이지만, 미국과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각종 경제 제재를 유지하고 있어 크림반도 주민들은 고립으로 인한 경제난이 심각한 상태다.
러시아와 크림 정부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기념행사를 벌이며 1주년을 자축하고 있다. 크림공화국 수도 심페로폴에서는 주민투표 실시일(3월16일)부터 병합 절차가 마무리된 날(3월21일)을 기념해 엿새 동안 매일 기념 음악회가 개최되고 있다. 러시아 흑해 함대 병사들의 사열과 반도 횡단 자동차 랠리도 진행 중이다.
러시아에서도 갖가지 기념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18일에는 병합 조약이 서명된 모스크바 크렘린궁 앞 바실리예프스키 언덕에서 집회 및 기념 연주회가 열린다. 연주회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세르게이 악쇼노프 크림 공화국 수장 등 5만명 이상 참가, 연방 구성원간 우정을 과시할 것으로 보인다.
악화되는 크림 경제… 경제 재제와 국유화
크림 정부가 러시아 품에 안긴 후 경제형편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당초 청사진과는 달리 외적으로는 서방국들의 경제 재제, 내적으로는 친러 정부의 대대적인 국유화 조치로 경제 기반이 급격히 와해되고 있다. 게다가 유가하락에 따른 러시아 루블화 가치 폭락 등으로 어려움은 더욱 극심하다.
크림주(州) 통계당국에 따르면 크림 반도의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무려 42.5%를 기록, 유가하락으로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63.4%)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러시아 전체 물가상승률(11.4%)보다도 4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무엇보다 식료품 가격이 52.9% 상승, 서민들의 체감 경제는 최악의 상황이다.
일부 러시아 일간지들은 이 지역 물가상승률이 53%를 넘는다고도 보도하고 있다. 합병 후 푸틴 대통령은 공공근로자들의 연금 및 임금을 2배로 올렸지만, 가파른 물가상승으로 인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의 경제전문가는 “크림반도가 우크라이나와의 경제관계 단절로 에너지 공급 및 운송 등에 차질을 빚으면서 경제난이 가중되고 있다”면서 “또 루블화 가치 폭락도 이 지역 금융권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국유화 조치도 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크림 정부는 1년 동안 에너지회사 은행 호텔 농장, 주유소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국유화를 단행했다. 지난해 3월 천연가스기업 체르노모르네프테 가스를 압류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12월에는 우크라이타 최대 은행 프리바트의 지분 대부분을 손에 넣었다. 우크라이나 법무부에 따르면 크림에서 이뤄진 국유화 조치는 약 4,000건, 토지 액수만 최소 10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러시아 친기업 성향의 야권 인사는 “러시아를 등에 업은 크림 정부가 개인 재산을 빼앗아 친 정부 인사들에게 나눠주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크림 정부는 그러나 “부당 거래로 인해 빼앗겼던 크림 국민의 재산을 되찾아 온 것 뿐”이라고 말한다.
미ㆍEU는 강“제재는 계속될 것” 강경
크림 반도를 어렵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미국 등 서방국들의 대러시아 제재다. 미국은 지난해 3월 6일과 16일 20일 그리고 12월 19일 등 네 차례에 걸친 제재를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와 연관된 공직자, 기업인 및 기업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고 입국 비자 발급을 금지했다. 미국은 또 올해 3월 제재 조치를 1년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를 지목하며 “미국의 대외정책과 안보에 대해 비정상적인 위협이 존재한다”면서 “이 위협은 우크라이나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자들의 정책으로부터 나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럽연합 역시 크림에서의 러시아의 군사력 증강과 인권 상황 악화를 들며 제재를 지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EU 28개국 외무장관들은 16일 성명을 내고 “러시아의 크림 병합을 인정할 수 없다”며 “러시아의 국제법 위반 행위를 지속적으로 비난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EU는 대러 제재가 러시아 경제에 상당한 충격을 준 것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반응이다.
러시아 투자로 활로 모색… 중국 투자 유치도 추진
크림을 되찾은 러시아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으며 84번째와 85번째 연방 구성원(크림 공화국, 세바스토폴 특별시)을 러시아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러시아가 지난 한해 크림에 쏟아 부은 돈은 1,400억루블(약2조5,000억원)이며 오는 2020년까지 모두 6,800억 루블(약 12조5,000억원)를 투입할 예정이다. 이 자금은 공화국 공무원들의 인건비와 주민 복지비, 상ㆍ하수도 및 전기 지원비 등에 쓰였다.
서방국의 제재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 투자 유치에도 적극적이다. 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직접투자펀드(RDIF) 대표는 14일 이집트에서 열린 이집트경제개발회의에서 “많은 중국기업이 러시아에 투자하고 있다”며 “러시아에서 중국 제품을 현지화할 수 있도록 공동투자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RDIF는 러시아 정부 주도로 설립된 국부펀드이며 투자 대부분이 러시아 경제를 활성화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RDIF에서 운용하는 외국인 장기 투자금은 150억 달러 안팎인데 러시아는 이 중 90%를 아시아와 중동에서 유치하겠다는 계획이다.
러시아 “주민들은 러시아를 원한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크림 주민 다수는 러시아 귀속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러시아 여론조사 전문기관 브치옴(VTSIOM)이 지난달 18, 19일 크림 주민 1,6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91%는 크림의 러시아 귀속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으며, 부정적인 평가는 5%에 불과했다. ‘다시 투표를 하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90%의 응답자가 러시아 귀속을, 5% 만이 우크라이나 잔류를 택했다. 지난해 3월16일 실시된 주민투표에서는 크림 주민 96.77%가 러시아 귀속에 찬성표를 던졌다.
세르게이 악쇼노프 크림공화국 총리는 BBC와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크림 병합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선택이었다”며 “크림은 역사적인 고향 러시아로 돌아간 것이며 다시는 우크라이나로 갈 일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크림에서 일어난 모습들을 정확하게 보도하지 않은 언론들 때문에 오해가 생기고 있다”며 서방언론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강주형기자 cubie@hk.co.kr
▶ 크림 사태란?
크림은 우크라이나의 자치공화국이었다. 하지만 2013년 12월부터 키예프에서 대규모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가 일었고 그 결과 2014년 2월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퇴진했다. 이에 러시아군은 2월27일 무장병력을 투입해 크림반도의 주요 시설을 점령, 러시아군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위기가 고조됐다. 이후 3월16일 주민투표에서 96.6%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러시아 귀속을 결정했고 이후 러시아는 21일 크림과 세바스토폴 특별시를 러시아 연방의 구성원으로 승인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와 서방국들은 “영토 변경은 (주민 투표가 아닌) 국민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는 우크라이나 헌법 조항에 따라 합병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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