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해는 떠올랐지만 마애여래삼존상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다. 충남 서산 가야산 계곡, 숲으로 둘러싸인 절벽과 한 몸을 이룬 채 편안한 표정으로 옅은 미소만 보여 줄 뿐이었다. 한참을 기다리니 갑자기 왼쪽 벽에 햇살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에 마음은 급해졌다. 한줄기 빛이 빠른 속도로 마애불 얼굴로 다가와 ‘영혼’을 불어 넣었고 순간, 깨어나는 백제의 미소를 보았다. 온화했다. 살아 숨 쉬는 백제인의 모습이 이러했을까. 하지만 찰나처럼 짧게 마애불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안타까운 마음을 추스르고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오후 1시, 해가 중천에 오르자 또 한번 얼굴에 찬란한 빛이 스며든다. 미소는 약간 사라졌지만 이때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해가 조금씩 서쪽으로 움직이면서 마애불의 얼굴 모습은 한편의 파노라마 영화가 됐다. 온화하면서 자비롭고 천진난만하면서 근엄하다. 변화무쌍한 다채로운 표정에 온통 정신을 빼앗기는 사이 어느덧 해가 기울며 마애불의 얼굴은 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희미해지는 세상과 함께 백제의 천년 미소는 아침에 보았던 편안한 표정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왕태석 멀티미디어부차장 kingwang@hk.co.kr
표정 변화 타임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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