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국이 영향력 행사 안돼"
中 도넘은 압박에 반격 나서
"전략적 모호성 탈피 시도" 평가 불구
"너무 일찍 편들어 한중 갈등" 우려
외교부 "사전 조율 없었다" 곤혹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놓고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우며 움츠려있던 정부가 17일 마침내 포문을 열었다. ‘사드 배치는 주권국인 우리가 결정할 사안’이라며 사실상 중국을 정면으로 겨냥해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이를 두고 정부가 뒤늦게 사드 배치 논란에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는 평가와 함께 한중관계 악화를 고려하지 못한 미국 편들기라는 비판이 엇갈렸다.
‘전략적 모호성’을 탈피하려는 시도?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작심한 듯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에 관해 미 정부가 결정해서 협의를 요청해 올 경우 군사적 효용성과 국가안보 이익을 고려해 우리 주도로 판단하고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청와대가 최근 사드 논란과 관련해 ‘미 측의 요청도 없고 어떠한 협의도 결정도 없다’고 밝힌 ‘3NO’에 비해 진전된 입장이다.
김 대변인은 그러면서 “주변국이 우리의 국방안보 정책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며 중국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방한 중인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가 전날 “중국 측의 관심과 우려를 중요시해 주면 감사하겠다”고 밝힌 입장에 대해 우회적이지만 강한 어조로 반박한 것이다.
국방부는 류 부장조리의 발언 수위가 도를 넘었다는 판단에 따라 강공에 나선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중국의 압박에 ‘전략적 모호성’을 앞세워 침묵으로 일관할 경우 군사주권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을 우려해 이를 적극적으로 차단하려 한 흔적도 엿보인다.
이날 외교부를 찾은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도 중국의 과도한 개입을 비판하면서 한미동맹의 공고함을 과시했다. 러셀 차관보는 기자들과 만나 “아직 배치되지도 않은 안보시스템(사드)에 대해 제3국(중국)이 주제넘게 거세게 항의하는 것이 별나다(curious)”고 밝혔다. 또한 러셀 차관보는 사드 배치와 관련 “언제 어떤 조처를 할지는 한국이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셀 차관보의 발언은 중국의 불만 표출에 대해 반박하면서 우리 정부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미국 편들다 한중갈등 격화한다는 우려도
국방부의 이날 입장을 두고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불만 표출을 명분으로 전략적 모호성에서 탈피하려는 시도라는 평가가 나왔다. 실제 우리 정부는 중국이 지난해 9월을 기점으로 베이징과 서울의 외교 채널을 통해 우리 측에 사드 배치에 대한 위협성 발언을 일삼아왔는데 불구하고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하며 가급적 마찰을 피하려 애썼다. 하지만 최근 여권 내부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걷어 제치고’ 공론화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부터 국방부의 입장이 상당히 곤궁해진 게 사실이다.
국방부의 입장 정리에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 중요하다’는 현실적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여 여부를 저울질하면서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 사드 만큼은 미국의 손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싸고 두 강대국이 심각한 기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우리 정부가 너무 일찍 미국 편을 드는 바람에 한중관계 갈등만 표면화시켰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AIIB와 달리 사드 문제의 경우 국익을 최우선에 두고 숙고를 거듭한 끝에 결정을 해도 늦지 않다는 조언을 해오던 터였다.
이날 국방부의 대응을 두고 부처간 혼선을 빚기도 했다. 국방부 브리핑 직후 외교부 관계자는 “우리와 사전 조율이 없었다”며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김 대변인의 발언 수위가 너무 셌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방부 관계자는 “중국을 상대로 대놓고 치받은 사안인데 청와대, 외교부와 조율하지 않은 메시지가 나갈 수 있었겠느냐”며 외교부 지적을 일축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외교ㆍ안보 컨트롤 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사드 배치에 대한 입장을 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중국의 반발이 커질 수 있는 만큼 불필요한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NSC를 통해 정부 방침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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