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DJ와 '아시아적 가치' 논쟁
"민주주의 거부 정당화" 비난 받기도
“민주주의 세계가 가장 좋아하는 독재자”. 워싱턴포스트는 23일 타계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를 이렇게 평가했다. 리 전 총리의 반세기에 걸친 통치 기간 싱가포르는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비판에는 불관용으로 일관하고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며 엄격한 사회 통제로 민주주의 발전을 억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리 전 총리가 통치 이념으로 강조한 ‘아시아적 가치’는 민주주의에 대한 경시와 엄격한 규율을 바탕으로 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리 전 총리는 자신의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모습을 보여왔는데, 그의 반대자 지순완은 정부의 허가 없이 사법부가 독립적이지 않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법에 의해 처벌을 받고 징역형을 살아야 했다. 표현의 자유 역시 엄격한 통제 아래 놓여있다. 정부 비판 보도를 하면 국내외 언론사를 막론하고 명예훼손 소송에 시달려야 한다. 이 때문에 지난해 싱가포르의 언론자유지수는 180개국 중 150위에 머물고 있다.
리 전 총리는 1994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아시아적 가치’를 두고 논쟁을 벌여 세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리 전 총리는 정치평론지 포린어페어에 서구를 따라잡으려면 아시아 국가는 국민의 정치적 자유를 일부분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이 같은 잡지에 ‘문화가 운명인가? 아시아의 반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한 신화’라는 제목의 기고를 통해 “리콴유의 주장은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리 전 총리의 가족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점도 비판거리다. 현 총리 리셴룽(李顯龍)이 그의 장남이며, 차남 리셴양(李顯陽)은 싱가포르 최대 통신업체 싱텔의 CEO를 거쳐 현재 싱가포르 민간항공청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며느리는 국부펀드 운용사 ‘테마섹 홀딩스’의 CEO다. 리 전 총리가 공직자의 부패를 강력하게 금지했다지만 뒤로는 가족을 요직에 앉혀 이권을 챙겨왔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싱가포르는 또 길거리에서 껌을 씹는 것부터 동성애에 이르기까지 사적 영역을 공공질서의 이름으로 지나치게 금지하는 것으로도 악명 높다. 법 집행에도 엄격해 아직까지 태형을 실시하는가 하면 사형집행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1980년대 고학력 미혼 여성들이 증가하자 세계에서 유례없이 중매를 서는 부서까지 만드는 등 국가 차원의 강력한 국민 생활 통제는 싱가포르를 ‘보모 국가’라는 비아냥을 듣도록 만들었다.
워싱턴포스트는 “리콴유가 자유주의 서구 사회에서 통용되지 않는 독특한 아시아적 가치를 가정해 선전하는 동안 남한, 대만 등은 민주주의와 경제적 번영을 이뤘다”며 “리콴유의 유산에서 어두운 부분을 버려야만 싱가포르의 성공이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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