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성 짙은 '파워블로거 마케팅' 효과 감퇴
소비자들 "블로거 협찬 안해야 더 믿음이 가"
“저희는 블로거들에게 제품을 무료로 협찬하지 않습니다”
기초화장품 제조업체인 이솔 코스메틱스가 최근 이 같은 공지 글을 올려 화제가 됐다. 이솔은 별도의 광고 없이 입소문과 자체 홈페이지 홍보를 통해 화장품을 판매하는 중소업체다.
공지 글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이례적으로 칭찬 일색이었다. “블로거 협찬 안 하는 기업이 더 믿음직스럽다” “‘파워블로거지’들에게 공짜로 홍보 물건 뿌리는 제품은 오히려 사기 싫다” “이브OOO은 보고 배워라” 등등 이번 공지를 계기로 이솔 코스메틱스를 더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화장품업계의 관행으로 자리잡은 ‘파워블로거 마케팅’의 효과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파워블로거 마케팅이란 유명 블로거에게 무료로 신제품을 제공하고 리뷰를 쓰도록 하는 홍보 방식으로, 이브생로랑, 샤넬 등 이른바 ‘명품’ 화장품 업체의 국내 지사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어쩌다 ‘파워블로거 마케팅을 안 하는 업체가 더 믿음이 간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홍보 목적이 과한 나머지 소비자 신뢰를 저버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정직한 리뷰란 없다
블로거들 스스로가 ‘정직한 리뷰란 없다’고 인정한다. 화장품 업체들이 단점은 없고 장점만 부각된 리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2년 동안 뷰티블로그를 운영해 온 박모씨는 “화장품을 써 봤는데 효과가 없으면 ‘안 좋다’고는 쓰지 않고 ‘더 두고 봐야 효과를 알 것 같다’라는 식으로 돌려쓴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뷰티블로거 한모씨는 “파운데이션을 썼는데 커버력이 좋지 않으면 ‘자연스러운 피부 표현이 연출된다’고 쓴다”면서 “정말 안 좋은 제품이라고 느껴지면 비밀글 기능으로 댓글을 단 사람에게만 단점을 알려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화장품 업체들은 아예 ‘리뷰 가이드 라인’을 준다. 박씨는 “단점을 쓰지 말라는 규정은 물론, 태그나 제목을 달 때에도 ‘피부를 환하게’ ‘트러블에 좋은’ 등의 표현을 미리 정해 주고 이 표현을 넣어 작성해 달라고 요구한다”고 밝혔다. 한씨는 가이드라인에 벗어난 글을 쓰자 업체에서 글을 수정해달라는 요구를 받기도 했다. 한 기초화장품를 리뷰하면서 ‘지성피부에는 유분기가 많을 것 같은 제품’이라고 솔직하게 쓰자, 그 부분을 빨간색으로 표시하며 수정해달라는 메일이 왔다는 것. 모든 피부타입 제품으로 나왔으므로 이런 문구는 판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가이드라인에는 제품을 받은 후 짧게는 1주, 길게는 한 달까지 글을 올려야 하는 기간도 정해져 있다. 뷰티블로거 최단비씨는 “솔직히 이정도 기간에 진짜 효과를 보고 후기를 쓰기는 어렵다”고 인정했다. 박씨도 “한두 번 써보고 글을 올린다”고 밝혔다.
● 리뷰 믿고 샀다간 낭패
정직하지 않은 리뷰를 믿고 샀다가 낭패를 본 소비자들도 적지 않다. 대학생 김모(22)씨는 “연예인 비누로도 유명한 A 수입비누가 2만원 상당으로 비쌌지만 블로거의 ‘돈값 한다’는 말에 혹해서 사게 됐다”며 “써보니 내 피부 타입에는 맞지 않아 다 쓰지도 못하고 버리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제 블로그 글은 다 광고 글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광고 글을 믿겠냐”고 흥분했다.
불신이 깊어진 소비자들은 뷰티블로거의 글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기도 한다. ‘파워블로그 리뷰 용어사전’이란 제목의 글은 수년 전부터 많은 네티즌들의 공감을 얻으며 화제가 됐다. ‘선물 받았어요’라는 블로거의 말은 ‘업체에서 줬어요’로, ‘전용 클렌저를 써 주는 게 좋아요’는 ‘클렌저도 사세요’ 등, 업체들의 ‘리뷰가이드’에 대응하는 ‘해독가이드’가 등장한 것이다.
● 블로거 우대에 박탈감
파워블로거를 우대하는 일부 업체들의 정책에 박탈감을 느끼는 소비자도 있다. 화장품업체가 주최하는 행사 등에서 평소 제품을 애용하는 ‘단골 고객’보다 파워블로거를 우대한다는 불만이다. 샤넬은 지난해 한 행사에서 파워블로거에게는 정품을 제공해주고, VIP 고객에게는 연필과 수첩을 주어 차별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네티즌은 본인을 스스로 ‘샤넬 호갱’이라고 칭하며, “파워블로거들에게는 매 시즌 신제품이 나오면 컬렉션으로 뿌리는데 우수고객이 오히려 차별당하는 것 같다”며 “샤넬 한국지사와 매니저에게 전화해서 화냈다”고 분노했다.
소비자들은 “체험을 가장한 거짓 후기보다 정직한 광고가 차라리 낫다”고 말한다. 화장품 품평을 회사의 주장이 아닌 진짜 체험자의 후기처럼 둔갑시키면 소비자들은 뒤통수 맞은 기분을 느낀다는 것.
나운봉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는 “파워블로거가 범람할수록 소비자의 신뢰도 검증 욕구도 커질 것”이라면서 “파워블로거들이 초심으로 돌아가 진정성을 갖고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에 충실하지 않는다면 신뢰를 잃고 마케팅 효과도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은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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