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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엿 먹어라’의 유래

입력
2015.03.2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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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요즘 인터넷에서 비속어 ‘엿 먹어라’의 유래를 놓고 한창 설왕설래가 있었다. 얼마 전 모 음악케이블TV의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한 여성 래퍼가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리며 “욕먹어, 엿먹어”라는 가사가 들어간 랩을 선보인 게 발단이 됐다. 웬만한 공격엔 꿈쩍도 안 하는 힙합가수들이지만 배틀에 나선 상대 래퍼조차 순간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이 가사는 방송에서 가려 내보냈지만 동작과 입 모양으로 읽어낸 네티즌 사이에서 곧 논란이 일었다. (▶영상바로보기)

▦ ‘엿 먹어라’에 욕의 의미가 담긴 것은 1964년 서울 중학교 입시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정설처럼 돼 있다. 당시 자연과목 18번 문제가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을 고르라’였고 디아스타제, 꿀, 녹말, 무즙이 보기로 제시됐다. 출제 측이 요구한 정답은 디아스타제였다. 그런데 무즙에도 디아스타제가 들어있음을 확인한 불합격생의 부모들이 실제로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문교부(지금의 교육부)와 시교육청에 찾아가 던지며 “엿 먹어보라”고 항의했다. 결국 무즙도 정답 처리됐고 소송에 참가했던 학생들은 구제됐다.

▦ 그런데 사실 훨씬 전부터 이 말이 있었다. 상대가 가당치 않은 말을 하면 “듣기 싫으니 엿이나 먹어라”는 식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1954년 8월22자 ‘古風ㆍ 今俗’칼럼에 따르면 이 말은 조선시대 군역제도와 연관이 있다. 당시 강원도 일부 지역의 군역 대상자들이 서울로 차출돼 왕십리 쪽에 집단거주지를 형성했고. 일부는 군역이 끝나도 귀향하지 않았다. 그들이 살던 초막이 집처럼 매매가 되기도 했는데, 누군가 초막을 사면 반드시 엿을 주변에 돌린 데서 이 말이 유래했다고 한다.

▦ 당시엔 글 모르는 백성이 많아 초막을 매매하면서도 계약서 같은 것을 작성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대신 동네아이들을 불러 엿을 돌리며 ‘얼마에 이 집을 샀다’는 얘기를 전하면서 일종의 대중공증을 받았다. 이후 소유권 분쟁이 생기면 동네사람들이‘내가 몇 살 때 엿을 먹었다’고 증언, 특정인의 소유를 증명했다는 것이다. 엉뚱한 주장에 대해 퇴박 주는 의미가 된 것이다. 재미있는 유래담들이지만 어쨌거나 방송에서까지 대놓고 할 말은 아니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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