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촌역서 20여분이면 구곡폭포
빙벽은 50m 폭포수로 변신 채비
산자락 밑 분지 문배마을은
9가구 모두 토속 맛집으로 이름
3~4시간 걷다보면 출발점으로
봄 하면 떠오르는 낭만의 도시가 있다. 강원 춘천(春川), 이름 자체에 봄을 품고 있는 도시다.
춘천에서도 봄의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은 북한강변을 지나 봉화산 자락에 자리 잡은 강촌이다. 사시사철 어느 때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이곳은 1960년대 인기를 끌었던 나훈아의 ‘강촌에 살고 싶네’의 배경이기도 하다. 이 노래는 김설강 시인이 1965년 춘천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던 중 산기슭에 자리 잡은 강촌역에 풍경에 매료돼 노랫말을 쓰게 되면서 탄생했다.
또한 강촌은 과거 대학생 MT의 대명사였던 곳으로 청춘들의 꿈과 낭만이 가득한 ‘젊음의 해방구’이기도 했다. 이처럼 강촌은 전원생활을 만끽하고 젊음의 끼를 발산하는 ‘낭만 1번지’인 셈이었다.
2010년 경춘선 전철 개통과 함께 춘천이 크게 달라지며 강촌에도 그 여파가 미쳤다. 낭만의 강촌에 한 가지 더해진 상징은 힐링이다. 이곳에 걷기 좋은 코스가 조성되면서 강촌이 전국민의 힐링로드로 탈바꿈했다. 구곡폭포와 봉화산길을 지나 문배마을을 거쳐 돌아오는 7.3㎞길이의 ‘물깨말구구리길’이 그 중심이다.
이름도 독특한 물깨말구구리길은 강 언저리에 자리잡은 마을을 뜻하는 ‘물깨말’과 쉼 없이 아홉 굽이를 굽어 도는 길이라는 ‘구구리길’이 합쳐진 순 우리말 지명. 의암호와 소양호, 북한강 등 춘천의 명소를 끼고 만들어진 여섯 갈래의 봄내길 가운데 두 번째 코스다.
물깨말구구리길은 봉화산(해발 520m) 속 구곡폭포를 찾아가는 길에서부터 시작된다. 구곡폭포 입구는 경춘선 강촌역에서 걸어서 20여분, 차로는 5분 가량 걸린다. 매표소를 지나 구곡폭포로 향하는 길은 조그만 개울을 따라 긴 산책로가 놓여 있다. 산책로 옆으로는 작은 개천이 졸졸 흐른다. 산 속을 흐르는 그야말로 청정수다. 3월 하순에 접어들었지만 최근 꽃샘추위 때문인지 그늘진 개울에는 아직 채 녹지 않은 얼음덩이가 보여 겨울과 봄이 공존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겨울잠에서 깬 다람쥐가 돌탑에 올라 앉아 있는 모습에 봄이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람쥐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자 어디론가 바쁘게 사라진다. 침엽수림 사이로 사이로 여기저기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고, 어디선가는 나무를 쪼는 듯한 소리도 들려온다. 산 능선에는 파릇파릇한 새싹이 군데군데 보이고 꽃들도 꽃샘추위를 이겨내고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 봄의 전령사인 야생화도 간간이 마른 땅을 뚫고 피어 이제 겨울이 지났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개천 건너 누군가 쌓아 올린 돌탑길에는 크고 작은 탑이 저마다 소망을 품고 있다. 김정환(50ㆍ서울 도봉구)씨는 “소박한 소망을 비는 돌탑들을 보니 역시 이곳이 낭만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길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어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절벽과 하늘로 곧게 뻗은 수목들이 웅장한 기운을 내뿜는 숲길을 지나 30여 분 가량 걸으면 나무 계단에 이르자 성벽처럼 거대한 암벽이 모습을 드러낸다. 50m 높이의 구곡폭포. 물줄기가 아홉 구비를 돌아 떨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깎아지를 절벽 폭포의 웅장한 자태에 입이 벌어진다.
구곡폭포는 인근 삼악산 등선폭포와 함께 춘천에서 경치가 수려한 곳으로 손꼽힌다. 여름에는 장쾌하게 바위를 뚫을 듯이 쏟아지는 폭포수가 장관이다. 겨울에는 깎아지른 빙벽을 오르기 위해 클라이머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폭포는 아직 녹지 않은 얼음 사이로 가늘지만 힘 있는 물 줄기를 쉴새 없이 쏟아 낸다.
물깨말구구리길의 최대 난코스는 문배마을로 향하는 산길. 일명 ‘깔딱고개’다. 경사가 급한 산비탈 위로 갈지(之)자로 꺾어지는 나타나는 만만치 않은 길을 로프를 잡고 40여 분을 넘게 헐떡대고 나서야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산자락에 밑에 움푹 파인 이 마을을 두고 춘천 출신인 의병장 이소응(1852~1930)이 문집인 ‘습재집(習齋集)’을 통해 ‘숨어 살기 좋은 곳’이라고 했던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이소응은 ‘계곡물 따라 끝까지 가보면(逐流到窮源) 마을이 평지에 펼쳐진다(有村開平疇) 샘물은 달고 토지는 비옥하며(泉甘而土肥) 산은 거룻배처럼 둥글게 둘러쳤다(山環似巨舟)’고 이 마을을 묘사했다. 그의 표현처럼 문배마을은 벼랑 아래에서 느닷없이 펼쳐지는 분지 촌락이다. 산 아래 숨어있는 촌락 모습을 보니 이 마을 사람들이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지도 모르고 지냈을 정도라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이 마을에는 현재 9가구가 모여 산다. 30여 년 전부터 마을 사람들은 강씨네, 이씨네, 장씨네, 김가네 등 자신들의 성씨를 내걸고 알음 알음 찾아오는 외지인들을 상대로 음식장사를 시작했고, 이젠 춘천을 대표하는 대표 먹을거리 타운이 됐다. 주말이면 옛 가옥을 고쳐 만든 토속음식점에서 허기를 달래고, 토속적인 정취를 느끼려고 주말이면 500명이 넘게 다녀간다. 일부 음식점은 널찍한 마당을 갖추고 있어 동호인 모임과 직장 단합대회가 심심치 않게 열린다.
문배마을 맛 집들의 대표메뉴는 토종 닭 백숙과 청정 나물로 만든 산채비빔밥, 매콤한 닭 볶음탕, 감자부침 등이다. 이곳이 아니면 맛보기 힘든 지역 색이 물씬 풍기는 먹을 거리를 맛보면 깔딱고개를 넘느라 힘들었던 순간이 금새 잊어진다는 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얘기다. 국산 콩을 직접 갈아 만든 촌두부와 가루를 직접 쑨 도토리묵도 미식가들의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넉넉한 인심 또한 문배마을 맛 집의 자랑거리다. 여기에 이 마을에서만 마실 수 있는 ‘문배주’ 한잔을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물깨말구구리길은 처음 걷기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오면서 끝난다. 이 길을 따라 서너 시간 남짓 산 속 여행을 끝냈을 땐, 어느새 봄이 한결 더 가까이 다가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글ㆍ사진 춘천=박은성기자 esp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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