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토마토케첩?" 호기심 품은 학자
동서양 종횡무진 누빈 언어 탐험기
음식 언어 속 사회·역사·욕망 들춰
서양의 추수감사절 음식을 대표하는 칠면조 요리의 칠면조는 영어로 터키, 나라 이름 터키와 이름이 같다. 둘이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토마토케첩은 왜 그냥 케첩이 아니고 토마토케첩인가. 고급 레스토랑의 메뉴 설명 단어는 왜 그리 길고 복잡할까. 페르시아 왕이 즐겨 먹던 쇠고기 스튜가 어떻게 영국의 피시앤드칩스가 됐을까. 왜 프랑스에서는 애피타이저인 앙트레가 미국에서는 메인 코스일까.
별 게 다 궁금하다고 핀잔을 들을 법한 이런 궁금증을 언어학자가 파고 들었다. 계량언어학의 세계적 석학 댄 주래프스키(스탠퍼드대 교수)가 쓴 ‘음식의 언어’에서 호기심을 풀 수 있다. 음식 용어가 뭐 대수냐 싶지만, 거기서 인류의 역사와 문화, 사회, 경제를 읽고 인간의 심리, 행동, 욕망의 근원을 파헤친 책이다. 어원과 사용 빈도를 중심으로 한 계량언어학적 접근에 심리학, 사회학, 행동경제학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칠면조가 터키가 된 내력에는 대항해 시대 패권 경쟁을 배경으로 아프리카와 유럽, 아메리카 대륙을 오간 음식 재료와 사람의 이동이 깔려 있다. 무역 우위를 뺏기지 않으려고 교역 물품의 정보를 철저히 숨겼던 포르투갈의 전략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서아프리카 조류 기니파울이 신대륙에 건너가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키우던 칠면조가 터키를 통해 유럽에 전해지는 과정에 둘이 헷갈려서 칠면조가 터키가 됐다.
오지랖 넓은 별난 학자의 호기심 대행진에 독자는 즐겁다. 음식 언어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홍콩에서 광둥어를 배우며 언어학을 연구하던 시절, ‘토마토케첩은 왜 토마토케첩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토마토케첩은 본래 토마토케첩이 아니었다. 고대 중국 한무제를 사로잡았던 강렬한 맛의 생선 젓갈이 원류다. 케첩의 ‘첩’은 한자 즙(汁)에서 왔다. 유럽이 세계의 주도권을 쥐기 전만 해도 중국이 국제 무역을 통해 널리 유통시켰던 이 음식이 미국으로 가서 토마토케첩으로 변신했고, 미국이 전세계 경제 패권을 쥐면서 세계인의 음식이 됐다. 그리 되기까지2000년이 넘는 긴 역사에는 대항해 시대의 해적과 선원들,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영국 소설가 제인 오스틴 등 여러 인물과 사건이 등장해 케첩의 역사를 변주하는 조연으로 활약했다.
케첩으로 시작한 저자의 음식 언어 탐험은 피시앤드칩스, 마카롱, 아이스크림, 칠면조, 토스트, 밀가루, 소금, 포테이토칩 등 다양한 메뉴를 차례로 섭렵하는데, 대항해시대의 중국과 유럽, 고대의 아랍을 오가며 음식 언어의 세계지도를 그려 보인다. 레스토랑 메뉴의 단어가 길수록 음식값이 비싸다든지, 똑같은 포테이토칩이라도 비싼 제품은 포장지 문구에 애용하는 단어가 따로 있다든지, 맛집 리뷰는 고급 레스토랑일수록 섹스 관련 언어가 많이 등장한다든지 등등 우리가 평소 무심코 넘겼던 사실들을 발견하는 과정도 재미있다.
저자는 “음식의 언어는 문화 충돌을 보여주는 창문이며 인간의 인지, 사회, 진화를 알게 해주는 은밀한 힌트”라고 말한다. 메뉴판에 적힌 요리 설명에서 그는 계급, 경제력, 사회, 역사, 욕망 등 온갖 종류의 언어학적 힌트를 읽어낸다. 값비싼 마카롱을 찾는 갑작스런 유행은 왜 생겼는지, 음식 제품을 작명하는 브랜딩 회사들은 더 ‘맛있는 소리’로 들리게끔 어떤 음운학적 전략을 구사하는지, 왜 메인요리도 아닌 디저트에 다들 엄청난 관심과 돈을 쏟아붓는지 별별 이야기를 두루 꺼낸 뒤에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언어와 문화의 공통성이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서로 다르지만 우리를 인간이 되게끔 하는 사회적 인지적 특징, 그 공통의 기반 위에서 차이를 존중하자는 것이 음식의 언어에서 저자가 찾아낸 교훈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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