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열차에 동참하라 "中 뉴노멀 시대는 새로운 기회"
일대일로 위한 5通 정책… 정책·시설·무역·자금·민심 상통, 정부 간 협력 강화 방안 제시
AIIB 회원국 급속 증가, 美 전통 맹방들도 결국 속속 가입
“세계는 변했고 역사는 인류의 운명을 바꿨다. 그 동안 아시아 각국은 위대한 발전을 이뤘다. 이제 아시아는 운명 공동체로 나아감으로써 새 미래를 열어야 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8일 이렇게 외쳤다. 그는 “대국(大國)이 된다는 것은 지역과 세계평화 발전에 더 큰 책임을 진다는 의미지, 더 큰 농단을 부릴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며 “상호 존중, 평등과 공영의 아시아 운명 공동체를 통해 인류 운명 공동체를 건설하자”고 역설했다. 미국을 염두에 둔 듯한 이 말은 이제 중국이 아시아 운명, 나아가 인류 운명까지 책임지는 대국으로 우뚝 서겠다는 선언이었다. 실제로 유라시아 지역의 경제 일체화를 향한 시 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에 이미 60여개국이 호응하고 나섰다. 중국 주도의 새 국제금융기구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는 미국 반대에도 불구하고 창립 회원국이 되기 위한 나라들이 벌써 40여개국이나 줄을 섰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란 꿈은 이미 실현되기 시작했다.
미일 주도 아시아 질서 다시 짜는 중국
시 주석은 이날 중국 하이난(海南)성에서 열린 2015년 보아오(博鰲)아시아포럼 개막식 기조 연설을 통해 아시아를 운명 공동체로 묶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먼저 “지난 70년간 아시아 각국은 자국의 상황에 걸 맞는 발전의 길을 따라 한 세대에서 다시 다음 세대로 쉬지 않고 노력했고, 그 결과 눈 부신 발전의 성과를 얻었다”며 “이제 아시아는 세계경제 총량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활력과 성장 잠재력도 가장 큰 지역이 됐다”고 평가했다. 시 주석은 이어 “아시아 각국은 독립 투쟁과 위환 위기, 재난 극복 등의 과정에서 서로 협력하며 ‘내 안에 네가 있고 네 안에 내가 있는’ 상호 의존성이 점점 커졌다”며 “아시아는 이제 운명 공동체로 나아감으로써 새 미래를 열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특히 “아시아는 세계의 아시아이고, 아시아가 좋아야 세계도 좋은 것”이라며 아시아를 하나로 묶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게 전세계에도 이롭다고 주장했다. ‘인류 운명 공동체’와 ‘대국의 책임’을 언급하는 대목에선 날로 높아지고 있는 중국의 국력에 대한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구체적으로 2020년까지 한국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이 동아시아경제공동체도 만들자고 제안했다.
“뉴노멀, 더 큰 기회”, 5년간 10조달러 수입
잠에서 깨어난 중국의 포효는 지난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990년 이후 가장 낮은 7.4%까지 둔화, 중국 경제의 경착륙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시 주석은 이와 관련 “중국 경제를 볼 때 성장률만 보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히려 “중국 경제가 뉴노멀(New Normal, 신창타이ㆍ新常態) 시대로 진입한 것은 아시아 국가를 포함한 전 세계 각국에 더 큰 시장과 성장, 투자, 협력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시 주석은 구체적으로 중국이 앞으로 5년간 10조달러(약 1경1,070조원)의 상품을 수입하고, 5,000억달러(약 553조4,000억원) 이상의 대외 투자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외 여행 중국인의 수도 5억명(연인원)이 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확실하게 보따리를 풀겠다는 얘기이다. 시 주석은 “우리 모두 ‘아시아 발전’이란 열차를 함께 이끌면서 빛나는 미래를 향해서 쉬지 말고 달리자”고 제안했다.
일대일로 구상,“독주 아닌 합창”
각국에게 중국이 주도하는 ‘성장 열차’에 올라 타라며 구체적으로 내놓은 것이 바로 일대일로 구상과 이를 위한 수단인 AIIB다. 일대일로란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이어지는 공동 경제권을 만들겠다는 실크로드경제벨트(一帶)와 동남아시아-서남아시아-중동-아프리카까지 해양 무역로 및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21세기해양실크로드(一路)를 함께 아우르는 개념이다. 시 주석은 2013년 9월 카자흐스탄을 방문, 실크로드경제벨트 구상을 처음 언급한 데 이어 그 해 10월 인도네시아를 찾아 21세기해상실크로드건설을 제안했다. 여기에는 세계 최강국이었던 당나라 시대의 실크로드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뜻도 담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은 무엇보다 미국의 봉쇄망을 뚫기 위한 전략적 목적이 크다. 중국은 미국의 ‘아시아 회귀’와 ‘아시아 재균형’ 정책이 사실상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이 일본의 무장을 부추기고, 아시아 동맹국들과의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일대일로를 구축하게 되면 중국으로서는 안정적인 자원 운송로를 확보하게 된다. 안정적 경제 성장을 위해선 우선 확실한 자원 안보가 보장돼야 한다.
일대일로 구상은 또 중국의 과잉 생산력을 해소하고 지역 균형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은 현재 중화학 공업과 전통 제조업의 극심한 공급과잉에 시달리고 있다. 교통망 구축이 중심이 될 일대일로 사업은 이러한 한계 산업에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줄 수 있다. 또 상대적으로 낙후한 중국 변경 지역 경제에도 활력소가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세계 최대인 외환보유고의 활용도도 높일 수 있다.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말 기준 3조8,400억달러(약 4,250조원)이다. 이를 미 국채에만 투자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종합하면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해 모두 1석5조의 효과를 보는 셈이 된다.
중국은 실제로 이날 시 주석의 연설 직후 일대일로 세부계획(액션플랜)을 전격 발표, 자신들의 관심사를 구체화했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외교부, 상무부가 함께 발표한 이 계획에 따르면 일대일로는 ▦정책소통 ▦시설연통(聯通) ▦무역창통 ▦자금융통 ▦민심상통 등 5통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정책소통이란 정부간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이야기다. 시설연통은 교통망(도로 철도 항구)과 통신망, 에너지 운송과 저장 등과 관련된 기초시설(송유관 가스관) 연결 등을 일대일로 건설의 최우선 영역으로 삼겠다는 것이 골자다. 무역창통은 자유무역지대 및 투자무역협력대상 확대가, 자금융통은 위안화의 국제화와 AIIB 및 브릭스(BRICS)개발은행 추진이, 민심상통은 문화교류 강화가 그 핵심이다.
일대일로 구상의 관건은 과연 다른 나라들이 얼마만큼 호응하느냐다. 시 주석이 “일대일로 건설은 함께 상의하고 함께 건설하며 함께 누린다는 원칙을 견지할 것”이라며 “중국 한나라의 독주가 아니라 관련 국가들의 합창”이라고 한 이유다.
호주ㆍ러도 AIIB 회원국 신청… 42개국으로 늘어
AIIB는 이러한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을 위한 강력한 수단이자 무기이다. 일대일로 구축에 필요한 교통 및 에너지 시설 건설 등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게 주임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세계은행(WB)과 아시아개발은행(ADB)도 있지만 이미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고 있어 중국이 제 뜻을 펴기엔 한계가 있었다. AIIB는 2013년10월 시 주석이 처음 제안한 뒤 지난해 10월 베이징에서 설립 양해각서 체결식이 진행됐다. 당시 참석국은 중국을 비롯 21개국에 불과했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 유럽 선진국도 모두 참여하지 않아 중국의 도전은 성공이 불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지난 12일 영국이 참여를 선언한 뒤 프랑스 독일 등이 곧바로 그 뒤를 이었고 26일에는 우리나라도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시 주석이 연설을 한 28일에는 호주 러시아 브라질 네덜란드 덴마크 그루지야 등 무려 6개국이 창립 회원국 신청을 했다고 중국 언론이 전했다. 이에 따라 AIIB 창립 회원국은 이미 40개국을 돌파, 42개국까지 늘어났다. 31일 마감까지 창립 회원국 신청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1966년 31개국으로 창립된 ADB보다 훨씬 큰 규모다. 특히 우리나라를 비롯 영국과 호주 등 미국의 전통적 맹방이 미국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 편에 선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다.
28일 시 주석을 만나기 위해 중국 남부의 작은 어촌 보아오까지 찾아 온 80여명의 각국 정상급 인사들은 회의장에 들어서기 위해 한참 동안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중국 관영 CCTV는 각국 지도자의 1호차 행렬이 이어지는 장면을 1시간 가까이 내 보낸 뒤 시 주석의 연설을 생중계로 전했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이어 또 다시 국제 행사의 주인장으로서, 달라진 국가적 위상을 과시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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