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이라는 아젠다로 계층투표
인접세대부터 설득해야
저성장보다 분배 불평등이 문제
촛불, 짱돌의 행동주의 아닌
각자 세대정신을 끌어내는 게 중요
26일 열린 제55회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 ‘한국 자본주의’ 북콘서트에서 운집한 청중들은 미간을 찌푸리기도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며 장하성 고려대 교수의 특강에 몰입했다. 특히 ‘평등화 세대로 살아달라’는 장 교수의 바람에 청년들은 질문을 쏟아내 뜨겁게 응답했다. 연이은 질문열기에 사회자는 연신 “정말 끝낼 시간”이라며 청중들에게 사과했다.
-50대 이상 ‘콘크리트 지지층’의 보수성향이 강하다. 고령 인구도 늘고 있다. 젊은 세대가 이 구조를 극복할 수 있나.
“맞는 얘기다. 기성 세대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20~30대는 아젠다를 세팅할 수 있다. 진보냐 보수냐 차원이 아니다. ‘우리 세대가 원하는 건 바로 이것’이라고 요구하고 투표하면 40~50대도 변한다고 본다. 보수성향의 70대 기업인들에게 강연했을 때다. 불평등 구조 보여주며 ‘이게 여러분 손자들의 현실이다. 더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나누자는 것’이라고 했다. ‘좌빨’이라고 할 줄 알았는데 박수를 받았다. 평등이라는 어젠다로 계층투표를 하며 인접세대부터 설득하면 된다. 물론 바로는 안 될 것이다. 어떤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에 기대하는 것은 개인적 경험으로 세상을 바꾸는 길이 아닌 것 같다(웃음).”
-대학에 계신 분 중에 이런 말 하는 분 많지 않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주장하는 것도 비주류 취급을 받는다.
“나는 학교에서 주류다(웃음). 꼭 좋은 뜻을 제가 가졌다는 건 아니다. 과거 재벌 총수들에게 소송을 가장 많이 냈다. 그래도 학교가 보호해줬다. 제발 그런 것 하지 말란 적 없다. 동료 교수들도 참고 지켜봐 줬다. 대학은 그래야 한다. 그렇다고 큰 뜻 가진 사람만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제 평생 처음 쓴 책이다. 그간에는 연구 안 한다는 말 듣기 싫어 논문을 열심히 썼다. 작은 문제에 대한 고민이 누적돼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회구조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삼포세대 부모인 50대 중반이다. 자식들 처지가 정말 답답하고 안됐다. 왜 이렇게 나빠졌나. 정권 때문인가, 복합적인가.
“시각에 따라 다르다. 김대중 정부는 국가부도 사태를 벗어나려 몸부림치다 뭘 못했다. 노무현 정부는 권위주의 청산 등 업적이 많지만 경제문제는 친기업, 친재벌, 친성장적이었다. 노 대통령 당선된 날 경제주도팀이 연락을 해와 조언을 부탁했다. 그러겠다 약속하곤 연락이 안됐다. 이건 실화다. 얼마 후 삼성경제연구원에 경제정책을 의뢰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니 얘기 다했다. 최근까지도 그런 경향이 계속됐다.
진보든 보수든 한국 사회의 정치인, 지식인, 학자들이 이 문제를 외면해 온 것도 잘못이다. 말이 안 되는 현상이 15년 이상 지속됐고 이제야 이야기가 시작된 거다.”
-분배를 말하면 자꾸 ‘지금 저성장이라 힘들다’고 한다. 맞는 얘긴가.
“지금 저성장이 아니다. 과거에 비해서 그럴 뿐이다. 중국이 고성장이라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6,300달러다. 우리 4분의 1도 안 된다. 모든 선진국이 과거보다는 성장률이 낮다. 경제가 성장해도 그 성과가 임금으로 분배되지 않아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이 늘어가는 게 문제다.”
-입시, 학점, 스펙만 보고 달려왔다. 정신을 한 순간만 놓아도 도태하고 잉여가 된다. 지금 개혁하겠다 나섰다가 나비혁명은커녕 펄럭일 날개조차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중요한 질문이다. 제가 40여년 전 했던 질문이기도 하다. 정확히 알 게 있다. 유신 반대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진 않았다. 그러나 나와 세상의 미래가 어두우니 감수한 거다. 그렇다고 여러분에게 ‘야 우리도 그랬으니 너희도 좀 해야 할 거 아냐?’라고 말하는 거 아니다. 나가서 짱돌을 던지라는 것도, 촛불 켜라는 것도, 토익책 보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일상을 침해하는 행동주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여러분은 이미 방법을 갖고 있다. 페이스북에 맛집만 올리지 말고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라’고 하라는 것이다. 좁디 좁은 바늘구멍 통과할 사람은 10명 중 2명뿐이다. 대다수는 ‘나는 된다’고 믿지만 절대 못 뚫는다. 방법은 바늘구멍을 넓히는 것뿐이다. 물론 필요하면 광화문에도 나가야 한다. 여러분 세대의 우상을 만들고 영웅을 만들어라. 여러분 세대에 시의원이 나오면 가서 찍어주고. 기성세대에 의지하지 마라.”
-낚시 해본 적 없는 사람한테 일단 물가로 가보라는 말 같다.
“이미 패배를 말하고 있다. 겁을 집어먹었다. ‘우리에게는 다소 버겁다, 처음부터 아예 이러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이야기다. 가보지 않은 길이라 모르겠다고 한다면 할 수 없다. 하지만 난 여러분 세대의 지성이 그것보다는 똑똑하다고 본다. 반값 등록금 논의만 봐도 당장 급하니까 이슈가 불처럼 일어났다. 굳이 기성세대를 공감시키려 할 필요 없다. 방법은 저도 누구도 가르쳐 줄 수 없다.”
-20대와 30대도 각각 생각이 다르다. 게다가 기성세대는 방관하는 수준이 아니라 방해하는 수준이다.
“각자 세대 안의 아젠다를 만들면 된다. 보육평등이든, 반값등록금이든. ‘월간잉여’라는 책이 있더라. 쓸모 없는 나머지들이 모여서 남는 시간을 쓸모 없게 보내자는 취지더라. 하지만 글을 읽어보니 쓸모 있는 게 무척 많더라. 그런 얘기다. 여러분을 정의하는 세대정신을 끌어내야 한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박준호인턴기자 (동국대 불교학 4년)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