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스 플린의 미치 랩 시리즈 7권 <반역행위>(이훈 옮김, 알에이치코리아)를 읽었다. 빈스 플린은 데뷔작 임기종료가 2009년 국내에 소개된 이래 이름만으로도 스릴러 팬들을 기대에 부풀게 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이번에도 그 기대에 넉넉히 부응했다. 아쉬움이라면, 재미있는 작품들이 대개 그렇듯, 너무 허겁지겁 읽게 만든다는 점이다.
미국 대선 유력 후보를 겨냥한 폭탄 테러와 함께 이번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요 희생자는 유권자들의 절대적 호감을 사던 미모의 대통령후보 부인과, 그와 동승한 경호실 특수요원.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가 무사했으니 실패한 테러?
범인은 치밀한 범행과 공들인 신분 세탁에도 불구하고 채 50쪽도 넘어가기 전에 미치 랩의 레이더에 포착되고, 120쪽 쯤에서 체포된다. 이야기 전체의 카운트 파트로도 손색 없을 국제 무대의 1급 킬러를, 그의 내력과 범행이력, 성격까지 미끈하게 만들어놓고도 저렇듯 가볍고 싱겁게 주저앉혀버리는 게 플린의 얄미우리만치 자신만만한 습관이다.
그리고 그의 주인공 미치 랩은 한술 더 떠는데, 그는 독자가 마음 졸일 새도 없이 악당의 정수리에 총구멍을 내놓곤 한다. 그건 상대가 시원찮거나 갈 길이 바빠서가 아니라 그게 랩이기 때문이다. 치밀한 추리와 감각적 판단. 일단 판단이 서면 거침이 없다. 음모와 협잡의 정치, 속고 속이고 기만을 기만하는 스파이의 세계와 첩보의 생리를 그는 그렇게 호쾌하게 돌파한다.
“스파이란 속임수와 거짓말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맥마흔은 그녀를 믿고 싶었으나,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47쪽)
“그는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가게 훈련을 받아 왔다. 누구를 속이든 잡히지 않고 임무를 완수한 뒤 살아남으면 되는 것이었다. 이 아파트는 그들이 그에게 가르친 것의 자연스러운 연장선이었다.”(197쪽)
랩은 조직과 위계의 사슬에도 좀처럼 얽매이지 않는다. 그의 본능과 판단이 상급자와 다를 때, 그래서 부당하거나 부적절해 보이는 명령에 불응해야 할 때 대개의 반항적인 형사들이 기대는 지혜- 때때로 허락보다는 용서를 청하는 것이 더 쉽다-조차 그는 안중에 없다. “랩은 용서와 허락 둘 다를 청하지 않을 참이었다.”(380쪽)
반역행위의 중반 이후는 저 ‘실패한 테러’가 이룬 추악한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전작들, 특히 직전 작품인 시리즈 6편 제거명령을 먼저 읽는다면 이번 작품에서 미치 랩이 처한 사정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겠지만, 건너뛰고 읽어도 물론 무방하다.
빈스 플린이 FOX-TV의 인기드라마 ‘24시’ 제작 자문을 했고, 미치 랩이 24시의 주인공 ‘잭 바우어’의 탄생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고 하는데, 둘의 스타일은 사뭇 다르다. 잭 바우어가 시간에 쫓기며 본인과 시청자의 피를 말리는 스타일이라면 미치 랩은 도장깨기에 나선 강호의 고수같은 품새로 좀체 여유와 기품을 잃지 않는다.(물론 늘 그렇단 말은 아니다.) 또 이번 소설은 정치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세계에 더 가깝다. 다만 ‘하우스 오브 카드’가 턱시도 차림의 칵테일 파티 분위기라면 그의 서사는 기름 냄새 풀풀 나는 병영 창고나 질주하는 허머의 정조에 가깝다. 그는 모두 14편을 남기고 만 47세 되던 2013년 전립선암으로 별세했다.
지중해 동부의 전략요충지 키프로스의 사연과 스파이들의 도시 스위스 제네바의 야누스적 이면을 주워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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