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고 2학년 3반 최윤민양 언니 최윤아씨 편지
지난해 세월호 참사로 숨진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 유가족이 광화문 광장 집회과정에서 겪은 경찰의 과잉진압과 정부의 4ㆍ16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의 모순을 지적하는 자필편지를 3일 한국일보에 보내왔다.
지난해 수학여행을 떠났다 주검으로 돌아온 단원고 2학년 3반 최윤민양의 언니 최윤아(24)씨는 편지에서 “참사 이후 심신이 힘들었지만 가족 모두가 동생의 죽음을 억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알리고, 기자와 인터뷰도 하고, 도보행진에도 참여하고, 국회와 광화문에서 농성을 하기도 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그럼에도 간절함이 부족했는지 정부는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법이 아닌, 다른 특별법을 내놓았다”며 “법을 제정할 권리가 없기에 싸우고 또 싸우다 반쪽짜리 특별법을 받아들였다”고 썼다.
최씨가 편지를 통해 밝히고자 한 문제점은 정작 그 다음부터였다. 그는 지난달 27일 입법예고된 정부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을 “반쪽짜리 특별법마저 뒤엎은 시행령”이라며 “엄마와 저는 또 다시 거리로 나왔다”고 밝혔다.
최씨는 “정부 시행령안은 법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이상하다”며 “‘령’은 분명 ‘법’보다 하위개념이라 배웠는데,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은 법보다 더 많은 권한과 제약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시행령안이 ▦허용된 권한을 넘어 위원회 운영방식까지 명시 ▦조사범위 축소 ▦특별조사위원회 독립성 훼손 등 특별법의 입법취지를 거스르고 있는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최씨는 또 시행령안 철회를 요구하며 시작된 서울 광화문 광장 농성집회 과정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달 30일 광화문 광장에서 경찰의 과잉진압, 폭행, 채증 등이 있었다. 경찰에게 불법이라고 소리쳤지만 경찰은 침묵하며 계속 법을 어겼다”며 “아무렇지 않게 불법을 저지르는 경찰이 무섭고, 억울함을 호소할 곳도 없다는 게 무섭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폭행을 당하는 것도, 억울함을 하소연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 가족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며 “다시 광화문으로 가 경찰들 앞에서 시행령 철회를 외칠 것”이라고 적었다.
그는 끝으로 “지난해 4월 16일부터 동생이 돌아온 23일까지 진도체육관에 앉아 동생을 기다리며 무기력과 죄책감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며 “이번 시행령안대로 특별법이 시행되면 동생을 또 지키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그때처럼 무기력하게 앉아만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무기력과 죄책감이 스스로의 목을 조르는 느낌을 알기에, 이번 시행령이 철회될 때까지 싸울 생각이다. 스스로 목을 조를 바엔 차라리 싸우다 경찰에게 맞고 억압받는 게 더 숨쉬기 쉽기 때문”이라며 “제발 이 나라에서 숨쉬며 살 수 있게 많은 분들이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최씨는 이날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지난해 사고가 덮어지고 유가족들의 본의가 왜곡될까 두려워 편지를 보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시행령 안이 발표되자 갑자기 배ㆍ보상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며 “일반 대중들은 유가족들이 더 많은 돈을 받아내기 위해 농성을 시작하고 시행령안을 반대한다고 오해할 수 있어 답답한 마음에 편지를 썼다”고 덧붙였다.
최씨는 편지에 적은 경찰의 과잉진압 당시 상황도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농성 당일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 사이를 이동하던 중 다른 유가족 2명과 함께 20여명의 남성 경찰에게 둘러싸였다. 경찰이 여성 유가족 1명을 밀친 후 쓰러뜨렸다”고 주장했다. 당시 쓰러진 여성은 이 과정에서 다리에 멍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이어 “남성 경찰들에 의해 유가족 2명이 모두 들려나갔고, 내가 그들을 따라나가려 하자 경찰들이 나를 몸으로 막다가 손으로 밀쳤다”며 “청운동 주민센터로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경찰들이 팔꿈치를 이용해 유족들을 미는 등 교묘한 폭행이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당시 집회 진압을 했던 서울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사회자가 청와대로 이동하자고 방송하자 참가자들이 질서유지선을 무너뜨리고 이동하려 해 경찰과 참가자들이 엉킨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남성 경찰이 여성 유족을 밀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최씨는 “회사 생활하며 돈 벌어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2년 가까이 다니던 직장을 지난해 12월 그만뒀다”며 “구직활동이야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동생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은 지금밖에 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유족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에 전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12일 단원고 희생자들의 형제ㆍ자매들과 함께 광화문 광장에서 스케치북 퍼포먼스를 열 계획이다. 최씨가 준비한 스케치북에는 형제ㆍ자매들이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위로 메시지, 세월호 사고를 잊지 말아달라는 대국민 호소 등의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아래는 최윤아씨가 보낸 편지 전문.
안녕하세요
단원고 2학년 3반 최윤민. 세월호에 탔다가 희생된 그 아이가 제 동생입니다. 저희 가족은 참사 이후 심신이 힘들었지만 동생의 죽음을 억울한 죽음을 만들지 않기 위해 뭐든 다 했습니다. SNS에 알리기도 하고, 기자와 인터뷰도 하고, 도보행진에도 참여하고, 국회와 광화문에서 농성도 하고,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서명활동과 간담회도 하고... 할 수 있는 건 정말 모두 해봤습니다.
그래도 간절함이 부족했는지 이 나라는 저희가 원한 특별법이 아닌 다른 특별법을 내놓았고 저희는 법을 제정할 권한이 없기에 싸우고, 또 싸우다, 반 쪽짜리 특별법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이 특별법마저 뒤집어 엎을만한 시행령이 발표되었고 엄마와 저는 또 다시 거리로 나왔습니다.
3월 30일 행진을 하다 경찰과 부딪혀 엄마와 떨어지게 되었는데, 엄마가 경찰에게 끌려가는 것을 보고 너무 놀라 어린 아이처럼 엄마를 외쳤습니다. 동생을 잃은 것도 모자라 엄마까지 잃을까봐.. 엄마가 다치실까봐 너무 무서워서 다 큰 성인이 엄마란 단어만 외치며 비키라고 울며 경찰들에게 애원했는데도, 경찰들은 절 억압하고 진압했습니다. 비키라고 난리를 치며 엄마를 찾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성경찰들이 저를 동그랗게 에워싸고 있었어요.
그날은 기자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경찰들의 과잉진압과 폭행, 채증 등 불법행위들이 많이 일어나 무서웠습니다. 경찰들에게 불법이라고 소리도 치고 화도 내봤지만 경찰은 침묵하며 계속 법을 어겼어요.
경찰이 법을 어기면 저희는 어디에 억울함을 이야기해야 하나요? 경찰에게 폭행을 당하면 누구에게 신고해야 하나요?
저는 경찰이 무섭습니다. 불법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경찰이 무섭고, 그로 인해 폭행을 당하고, 억울해도 하소연할 곳도 도움을 청할 곳도 없다는 게 무섭습니다.
하지만 전 또 광화문으로가 경찰들 앞에서 시행령을 철회하라고 외칠 겁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폭행을 당하는 것도, 억울함을 하소연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 가족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프면 아프다고 그만하라고 소리칠 수 있지만, 동생은 아프고 억울하다고 말할 수 없으니까, 그것에서만큼이라도 동생을 지키고 싶어 몇 번이고 거리로 나설 겁니다.
이번 시행령은 법을 잘 모르는 제가 봐도 이상합니다. ‘령’은 분명 ‘법’보다 하위개념이라고 배웠는데,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은 법보다 더 많은 권한과 제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법을 만들고 정치하는 분들이 저보다도 법과 령의 차이를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면 법체계도 무시할 만큼 감추고 싶은 것이 있는 건가요. 이번 시행령대로 특별법이 가동되면 전 제 동생을 이번에도 지키지 못한 게 됩니다. 지난해 4월16일부터 동생이 돌아온 23일까지 무기력하게 진도체육관에 앉아 동생을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전 무기력감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죄책감에 숨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전 그때처럼 무기력하게 앉아만 있을 수 없습니다. 무기력과 죄책감이 스스로 목을 조르는 그 느낌을 알기에, 저는 이번 시행령이 철회 될 때까지 싸울 생각입니다. 가만히 앉아 제 스스로 목을 조를 바엔 차라리 싸우다 경찰에게 맞고 억압받는 게 더 숨쉬기 쉽기 때문입니다.
제발 이 나라에서 숨쉬며 살 수 있게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만이라도 동생을 지킬 수 있게 제발 도와주세요. -동생을 지키고 싶은 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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