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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 칼럼] 불청객 ‘감기’가 가져온 선물

입력
2015.04.0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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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고열 끝 독감은 '감기와 달라'

병 부르는 건 수면부족, 과로 등 피로

대신 가진 휴식과 여유 선물에 감사

기관지염과 같은 호흡기 질환에 약하기 때문에 환절기에 조심하는 편이지만, 바쁜 일상에 잠시 정신을 놓으면 종종 감기의 모습으로 찾아오는 불청객의 마수에 걸려든다. 서서히 증상을 시작해 자신들의 방문을 예고하고, 찾아와서도 간헐적 고통으로 내 육체와 동거를 즐기다가, 떠날 때는 별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 이자들의 수법이었다.

이자들을 쫓아내기 위해 할 일도 별로 없다. 감기 증세로 일반병원에 가봐야 간단한 해열제 정도를 처방해줄 뿐이다. 의사들의 첫 질문은 늘 “감기 걸린 지 며칠 됐지요?”이고, 질문하는 이유도 잘 알고 있다. 뾰족한 치료약도 없으니 나을 시간을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며칠 버티다가 병원에 다녀오면, 처방약을 다 먹기도 전에 이자들은 떠나곤 했다. 이들도 손님행세를 하고 싶은 것일까, 최소한의 대접은 받아야 떠나니.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어느 날 점심 때 갑자기 찾아와 3박4일 내내 쉬지 않고 고열에 시달리게 했다. 시작부터 심상치 않아서 친형의 병원을 바로 찾았다. 급성 기관지염이라며 수액을 투여하고 혈관주사도 놓았다. 며칠 분의 약까지 처방해 주면서 의사 형은 결정적인 처방전을 잊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야 나을 거다.”

할 바를 다했으니 이제 좀 낫겠지 했는데, 열은 더 나고 통증은 심해졌다. 약을 먹으면 열이 떨어져 한 두 시간은 그래도 편안했는데, 이번에는 전혀 소용이 없었다. 열이 계속되니 오한, 근육통, 기침, 콧물 등 모든 감기 증상이 괴롭혔다. 병가를 내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는 수밖에 없었다, 통증과 수면 사이에 잠시 정신이 들면, “감기가 아니라 다른 중한 병이 아닐까?” 걱정이 들 정도였다.

만 나흘을 고열에 시달리다 드디어 어제 밤, 속옷을 두 번 갈아입을 정도로 흠뻑 땀을 쏟고야 열이 떨어졌다. 여전히 기관지에는 가래가 걸려있고 기운은 없으나, 열이 떨어졌으니 이 고약한 자들의 정체도 결국은 감기였고, 다음 주말까지는 떠날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이 참에 감기를 연구하기로 했다. 그러나 상식 이상의 소득은 없었다. 단 한 가지 알게 된 새로운 지식, ‘독한 감기’ 정도로 알고 있었던 독감은 감기와는 원인과 예후가 전혀 다른 질병이라는 사실이다. 증상도 감기와 비슷해 구별하기 어렵고 대부분 독감 역시 근본적 치료법은 없다니, 의학적 지식을 쌓은들 실생활에 별 도움이 못 된다.

오히려 인문학적으로 감기를 고찰하면 어떨까? 감기(感氣)는 ‘기를 느끼는’ 것이고, 독감(毒感)은 ‘악독한 느낌’이다. 명칭부터 너무나 다르다. 건강할 때는 모르지만, 기가 약해지면 기에 민감하게 된다. 감기 환자가 기를 회복하는데 좋은 것은 풍부한 영양과 충분한 휴식이다. 내 경우는 무엇보다 잠이 최고였다. 이번 독한 감기의 원인을 굳이 찾는다면 누적된 수면 부족이었고, 업무의 부담이나 바쁜 일정이 주 원인이다. 피해야 할 것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고 특히 머리를 쓰며 말하는 일이다. 고열 중에도 어쩔 수 없는 회의와 약속들을 치렀는데, 그 뒤에는 어김없이 ‘악화된 느낌’에 시달렸다.

감기라는 불청객은 고통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휴식과 여유라는 선물을 강제로 안겨준다. 조직의 책임자로, 집안의 가장으로 지내던 일상을 벗어나, 고통 앞에 허약한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행복한 시간이기도 하다. 동료들의 위로와 가족의 돌봄도 받으니 심리적 보상도 쏠쏠하다. 아파 봐야 비로소 몸에 좋고 나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된다. 아프면 식욕도 없어진다지만, 내 경우 오히려 더 먹고 푹 쉬니 기운을 느끼고 회복하는 것 같다. 그래서 질병인 減氣가 아니라, 증상인 感氣라고 부르나보다. 감기의 선물은 꽤 크고 화려하다. 좋은 선물에는 감사하지만 그래도 감기의 재방문은 사양한다.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ㆍ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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