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새정치민주연합의 ‘다 함께 정책 엑스포’ 마지막 날. 국회 의원회관에는 아이돌 가수가 나타나기라도 한 듯 청바지에 흰 티셔츠를 입은 중년 남성 주변에 책에 사인을 받고 싶다는 대학생부터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는 중년 여성 심지어 아저씨들까지 수 십 명이 달려들어 손 잡고 팔짱 끼느라 매우 혼잡스러웠습니다. 구름 인파 속에서 난감한 듯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고 사인을 해주던 이날의 스타는 안희정 충남지사.
안 지사는 이날 엑스포 폐막식에서 ‘냉전적 복지 논쟁의 종언’이란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습니다. 연설 후 다음 일정을 위해 이동 해야 하지만 안 지사는 ‘팬’들의 요청에 기꺼이 응해줬습니다. 심지어 한 시민이 ‘택시 문제는 비단 서울시의 문제가 아니다’고 주장하며 안 지사에게 입장을 묻자 즉석에서 ‘짤막 토론’을 벌이며 다음에 꼭 다시 얘기하자고 했는데요, 현장에서 만난 안 지사의 한 측근은 “이 정도 인파는 충남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라 새삼스럽지 않다”며 “ ‘충청의 아이돌’이라 불린다”고 귀띔했습니다.
이날 폐막식 사회를 봤던 윤관석 새정치연합 의원은 안 지사를 소개하며 “차세대 리더”라고 했습니다. 그런 안 지사의 연설에서 눈에 띄는 것은 DJ(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이 여러 번 나왔다는 점입니다.
안 지사는 DJ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1971년 대선 과정을 통해서 빨갱이 호남 출신이라는 모진 비난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외교 안보 군사전략에 대한 새로운 대안과 새로운 경제 성장분배 전략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김대중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는 박정희를 반대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이 분단된 한반도가 어떠한 생존 전략으로 가야 하는지 용감하게 얘기했습니다. 군사정권이 시민의 인권과 자유를 위배해서는 안 된다고 설득했습니다. 새로운 민주주의 새로운 경제번영을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안 지사는 “복지와 경제성장, 외교통일 모든 것들이 귀결되는 것은 결국 정치의 영역”이라며 “우리가 다뤄야 할 정치라는 여야 경쟁은 지난 20세기의 적대적 투쟁관계가 돼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정치인들이 서로 으르릉거리고 비난만 할 게 아니고 미래의 더 나은 모습을 위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박정희 군사정권에서도 정책적 비전과 대안을 제시했던 DJ를 본받아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안 지사는 연설 마지막에 DJ를 다시 한 번 언급하며 마무리했습니다. “정치인들은 잘못된 의제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정책을 통해서 새로운 민주주의 수준을 높이고 이 수준으로 21세기 전환기, 산업적, 세대적 전환점 합의 이뤄내야 합니다. 40년 전 김대중 대통령의 모습은 위대한 일보 진전이었고 이제 우리가 그것을 이어가야 합니다. 반대와 안티테제에 머무르지 맙시다. 미래에 대한 소망으로 자기 연설을 채웁시다. 그것이 국민이 원하는 새로운 정치이고, 21세기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야로 갈려 대립과 반목만 되풀이 해 온 정치권을 비판하면서 40년 전 DJ가 보여준 모습을 본받아 21세기에 걸맞는 새로운 정치의 모습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 안 지사의 주장이었습니다. 안 지사의 연설에 DJ를 비중있게 다룬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안 지사의 측근은 “3,4년 전부터 DJ 평전과 과거 인터뷰 기사 등을 열심히 읽고 있다”며 “롤 모델이라고 하기에는 부담스럽지만 그 정신을 본받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특히 군사정권의 서슬 퍼른 감시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비전을 제시했던 DJ에 대한 존경심이 남다르다는 것이 안 지사 주변의 전언입니다.
안 지사는 DJ 뿐만 아니라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 백범 김구 선생 등 20세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물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열공 중이라고 합니다. 안 지사 측근 인사는 “젊은 정치인으로서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안 지사의 역할이고 그것이 자신의 강점을 제시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무작정 과거를 부정만 할 것이 아니라 지금의 한국사회를 있게 한 인물들을 파악하고 그들로부터 배울 점은 배우고 극복해야 할 부분은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분야도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가리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역사에 대한 안 지사의 관심과 고민은 어제 오늘 일 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는 2008년 통합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 할 당시 “당의 뿌리인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두 분 사진을 당 사무실에 걸어두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현재 새정치연합 사무실 곳곳에는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