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진상조사 못할 가능성 컸기 때문에 특위 만들어 진상 규명하려던 것
참사 발생 1년 앞두고 나온 정부 시행령안 세월호 진상규명 방해 압권
아이들의 죽음 거름 삼아 후손에 좋은 사회 물려줄 계기 차 버리지 말아야
지금 이 나라에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세월호 사고 피해 유족들이 사고 1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진상규명도 되지 않은 것에 항의하면서 삭발한 채 1박 2일 도보 행진을 하고, 찬비를 맞으며 광화문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 그들은 세월호 특위의 시행령안을 폐기하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다른 편에서 정부는 아직 진상규명도 되지 않았는데 배ㆍ보상금 신청하라고 설명회를 개최하였다.
왜 이 비극적인 사고의 피해 유족들이 이렇게 삭발까지 해야 하는가? 유족들이 사고의 진상 밝혀달라는 것 외의 어떤 요구도 하기 이전인 사고 직후 새누리당은 유가족 특례입학, 의사자 인정 등 보상 조치 카드를 끄집어낸 적이 있다. 그래서 유족들이 지나친 요구를 한다는 여론을 조성해서 단식농성하는 유족 앞에서 ‘폭식 투쟁’이라는 반인륜적인 반대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국정원은 단식 농성했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를 사찰까지 하였다.
진상규명은 물론 책임 소재가 밝혀지지 않았는데, 배상금을 지불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배상 신청자에게는 “앞으로 이의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겠다고 하니 배ㆍ보상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해 보인다. 과거의 인권침해 사건 피해자 유족들은 국가의 보상금을 받은 이후 ‘특혜 집단’ ‘자식 목숨을 돈으로 바꾼 사람’으로 매도되었으며, 추가 진상규명 요구나 국가의 사과요구를 접었다. 그들에게 배ㆍ보상금은 덫이었다.
세월호 침몰은 해상교통사고인가? 그런 측면도 있다. 그런데 드러난 수많은 자료나 증언에 의하면 구조할 수 있었던 아이들 상당수가 죽은 것이다. 그렇다면 사고의 원인뿐만 아니라, 정부의 구조 실패에 대한 진상을 밝혀야 한다. 누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밝혀야 이런 안전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그것은 유족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알 권리 문제다. 어느 부모가 손가락이 골절되도록 살려고 발버둥치다 죽어간 사랑스럽고 귀한 자식의 시신을 보고서 죽음의 원인을 묻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을까?
검찰이 진상조사를 제대로 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국민적 합의기구인 세월호 특위를 만들었고, 진상을 규명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처음부터 특위가 수사권을 갖는 것을 극력 반대해 왔고, 야당이 그들의 고집에 굴복하자 그 다음에는 유족의 진상규명 요구에 거부감을 보인 사람들을 위원으로 추천했다. 그런데 특위의 조사 개시에 전혀 의지를 보이지 않던 정부가 참사 발생 1주년을 코 앞에 두고 제출한 시행령안은 그 동안의 모든 진상규명 훼방 과정을 종합한, 단연 압권이다.
국민들은 ‘이제 특위가 구성 되었으니 진상규명이 잘 되겠지’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특위가 제대로 진상규명을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예산과 인력이 있어야 하고, 관련 정부 부처가 자료 제공 등 협조를 해주어야 한다. 진상규명 의지를 가진 전문가들이 조사를 지휘해야 한다는 점이 특위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래서 시행령이 법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런데 여야가 합의해서 통과된 특별법도 수사ㆍ기소권이 없어서 특위는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될 판인데, 시행령마저 법의 취지를 살릴 수 없다면 이후의 결과는 불문가지다.
이번에 해수부가 제출한 시행령안은 세월호 특위를 무력화할 가능성이 큰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우선 조직의 인사와 예산을 통괄하는 사무처장이 친박계 인사로 알려져 위원장과 호흡을 맞추기 어려운 점이 있는데, 그 밑에 해수부가 파견하는 기조실장이 ‘진상규명 업무를 종합ㆍ조정’하는 막강한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진상규명국’은 독자적 조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 조사 결과를 분석’만 하도록 했다. 위원회 조직에서 최종 결정권은 위원들이 갖고 있지만, 사무국에서 인력과 예산을 통제하고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을 경우 위원회는 아무런 실권 없는 자문기구로 전락하게 된다.
우리가 기존 관료 조직 대신에 위원회를 만들어서 국가적 과제를 처리하는 이유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특별 사안을 독임제 관료 조직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세월호 특위처럼 조사 대상이 되어야 할 해수부 같은 정부 기관이 조사의 주체가 되겠다고 하면, 국민적 신망을 받는 위원이나 위원장이 아무리 제대로 하려고 해도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게 된다. 정부가 사무국을 장악해서 위원장과 위원들을 들러리로 만들 작정이었으면 이런 조직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만약 이 시행령대로 특위가 활동한다면 사무처장이나 기조실장은 청와대나 해수부 등 구조 당시 책임을 가진 기관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할지, 사고 현장의 해경 선원 등 주요 인물들의 핵심 증언을 청취하려 할지 의문이다. 하급직 민간 조사관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파견 공무원 출신 기조실장이나 조사국장의 벽을 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동안 이 정부나 해수부가 해온 일을 보면 그들은 진상규명 보다는 그것을 차단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설사 조사 보고서가 위원회 심의 테이블에 올라가더라도 애초 유족들을 비하하거나 진상규명을 반대했던 몇 위원들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억지 논리로 위원회 의사 결정을 파행으로 몰고 갈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이 위원회는 아무런 성과 없이 내부 분쟁만 계속하다 문을 닫을 수 있다. 언론과 국민은 진상규명은커녕 갈등만 일으키는 이런 특위를 바라고 그렇게 줄기차게 요구했던 거냐고 오히려 유족이나 시민단체를 비난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석태 세월호 특위 위원장은 “정부 여당이 방해공작을 하고 있다”고 보면서 시행령 철회와 대통령 면담을 요청한 상태다. 청와대는 아직 답이 없다. 만약 정부가 이런 식으로 진상규명을 방해하려 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진도체육관에서 유족들 앞에서 한 ‘원인 규명’약속은 모두 거짓이 된다. 유족들이 배ㆍ보상과 진상규명을 맞바꾸는 순간 유족들은 고립되고 잊혀질 것이다. 진상규명도, 책임소재 규명도 없이 특위가 마무리되면 유족들은 과거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이 그랬듯 국가 내의 ‘비국민’으로 살아갈지 모른다.
지난 70여년 동안 우리는 국가의 무책임과 피해자의 억울함이 악순환하는 것을 지긋지긋하게 보아왔다. 그런 일을 또 반복해야 하는가? 더구나 이 사건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발생한 고문, 의문사 등과 같은 국가 범죄 사안이 아니다. 따라서 이 정부가 조사를 이렇게 방해할 이유가 없고, 보상안을 계속 들먹거리면서 유족들에게 모멸감을 줄 이유가 없다.
이 특위는 국가의 안전관리 체계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하는 우리사회의 시스템을 점검하기 위한 아주 좋은 기회이고, 그것을 통해 국가의 부재, 정부의 무대응에 허탈해하고 있는 유족과 국민들에게 정부가 약간이라도 신뢰를 얻을 기회다. 아이들의 죽음과 유족의 상처를 거름 삼아 장차 이 땅에 살아갈 후손에게 좋은 사회를 물려줄 수 있는 이 계기를 발로 차 버린다면, 우리에게는 과연 무슨 미래가 남아 있을까?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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