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헵번 아들 가족 1차로 5,000만원 쾌척
“시들어 갈 수 있는 화환을 보내기보다 남아 있을 수 있는 아름다운 숲을 선사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세기의 여배우 오드리 헵번의 첫째 아들인 션 헵번은 9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세월호 기억의 숲’프로젝트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남 진도 팽목항 인근에 세월호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진행 중인 이번 프로젝트는 션 헵번이 지난해 사회적 기업인 트리플래닛에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들 가족은 프로젝트를 위해 1차로 5,000만원을 쾌척했다.
션 헵번은 “생전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면서 어린이 구호 활동에 앞장서 온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고통 받는 가족을 위로하고 사랑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나무들이 그 자리에 보초병처럼 서서 희생자와 유가족은 물론 우리 모두를 연결해주고, 지켜줄 거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직접 준비해왔다는 션 헵번의 노란 넥타이와 부인인 카린 호퍼 헵번의 노란색 장갑, 장녀 엠마 헵번의 노란색 스카프가 애도의 깊이를 더했다.
션 헵번 가족과 트리플래닛은 이날 숲을 은행나무로 꾸민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은행나무는 1,000년을 사는 나무로 알려져 영속성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가을이 되면 노란 리본이 달린 모습을 연상시킬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여기에는 건축가 양수인 뉴욕 컬럼비아대 교수의 재능기부로 ‘세월호 기억의 방’이라는 추모관도 설치될 예정이다. 기억의 방은 희생자 및 실종자 300여명의 이름과 가족들이 작성한 메시지로 꾸며진다. 소식을 접한 안산 단원고 생존자 학생은 벌써부터 현판에 넣을 글을 보내왔다. “내가 너희 있는 곳에 갈 때쯤에는 엄청 늙어 있겠지? 나 만나면 늙었다고 놀리지 말고, 우리 다음 생에도 유년시절을 같은 단원고에서 보내자. 사랑한다 친구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도 여기에 화답했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단원고 희생자 최성호군의 아버지 경덕씨는 “농성을 이어가는 등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 번 쉬어가는 쉼표 같은 시간이라고 생각하겠다”며 “많이 힘들어 하고 있는 부모들에게 좋은 제안을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조은화양의 어머니 이금희씨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주시고 숲까지 조성해주셔서 감사 드린다”고 답했다. 이씨가 끝내 울음을 터뜨리자 션 헵번은 말 없이 이씨의 손을 꼭 쥐어주었다. 션 헵번도 5명의 아이를 둔 가장이다.
이들은 숲 조성을 위한 시민들의 참여도 촉구했다. 김형수 트리플래닛 대표는 “처음에는 션 헵번 가족 주도로만 조성할 계획이었으나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기금을 모집하게 됐다”며 “1차 목표 모금액은 1억원”이라고 설명했다. 홈페이지(www.sewolforest.org)를 통해 기부할 수 있으며 홈페이지가 개설된 지 하루도 안 돼 오후 3시 현재 1,300여만원이 모였다.
숲은 10일 착공식을 시작으로 5월까지 30그루가 심어질 예정이며, 돈이 모이는 만큼 숲이 커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들은 미국 뉴욕의 9ㆍ11 테러 추모공원도 만드는 데 10년 가량이 걸린 만큼, 장기적으로 제대로 만들어가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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