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부의 집중과 불평등을 비판하는 캐치프레이즈는 ‘20 대 80의 사회’에서 ‘1 대 99의 사회’로 급속히 악화했건만, 상위 1%의 부자들은 여전히 규제완화를 부르짖으며 지금의 이 자본주의조차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또 어떤가. 우리가 인류 최고의 정치적 발명품이라 자부해왔던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와 민주라는 근본적으로 상충하는 두 가치로 인해 허우적거리고 있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자유주의와 국민의 합의를 최대한 존중한다는 민주주의는 수시로 공익과 사익의 갈등을 초래하고, 대의민주주의는 대체로 국민의 뜻을 대리하지 못한 채 이익단체에 포획돼 있다.
원로 경제학자인 이정전 전 서울대 교수의 ‘왜 우리는 정부에게 배신당할까?’는 정치와 정부가 언제나 실패하고 있다면 거기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경제학적 관점에서 그 문제를 들여다보려는 시도다. ‘민주주의를 위한 경제학’이라는 부제처럼 경제학의 이론적ㆍ실증적 연구들을 망라해 왜 이 나라의 정치가 이 모양인지, 왜 세월호 같은 사건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규명하고 그 대안을 모색한다.
3부로 구성돼 있는 책은 각각 시장의 실패, 정치의 실패, 정부의 실패를 다룬다. 시장의 실패는 자본주의 이래 끊임없이 대립해온 시장과 국가의 관계를 포괄적으로 살피며 왜 정부가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서 시작해 케인스학파와 시카고학파의 차이,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으로 대표되는 재분배와 정의의 문제까지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을 두루 살핀다.
총론 성격의 1부보다는 경제학의 틀로 선거와 정치, 정부와 조세의 문제를 다루는 2,3부가 더 흥미롭다. 저자는 버지니아학파로 불리는 신(新)정치경제학을 끌어들여 투표제도와 여론수렴 절차의 허점, 정부의 비대화와 관료의 사익추구 문제, 지대추구를 위한 정경유착 문제 등을 고찰한다. 신정치경제학은 시장에서의 상품 선택처럼 정치도 유권자의 공공선택에 따른 수요ㆍ공급의 법칙으로 이뤄진다고 보며,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존재라는 경제학의 믿음에 따라 정치 제도 및 현상을 분석한다. 이렇게 보면 정치가 왜 그렇게 비효율적인지 일반 국민들의 갑갑증이 어느 정도 풀린다.
하지만 일찍이 애덤 스미스가 강조했던 것처럼 인간의 내면에는 사익을 추구하려는 본능인 ‘열정’과 함께 공공선에 대한 욕구인 ‘공정한 방관자’가 동시에 들어앉아 있다. 그래서 저자는 신정치경제학의 비판적 수용을 통해 정부와 정치의 실패를 규명하는 동시에 난관에 봉착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한다. 다소 상투적인 결론이지만, “시장을 효과적으로 견제함으로써 시장의 실패를 최소화하고, 정부를 효과적으로 견제함으로써 정부의 실패를 최소화할 것”을 제안하며, 그 주체로 시민사회를 호명한다.
사실 이 책은 목청 높여 주장하는 책은 아니다. 주류 경제학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두루 연구해온 저자답게 좌우를 균형 있게 고찰하며, 고전부터 최신 이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연구결과들을 차분하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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