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설치작업 내일 마무리 / 누군지도 모르는 4500여명 참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글과 그림, 타일 한 장 한 장마다 간절한 마음
"정부가 시큰둥하니 국민도 그럴까 이해도 되지만 한편으로 섭섭해"
“젊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었어. 오래오래 가야 할 일이지. 잊어서는 안 될 일이지. 매스컴이 지겹도록 이것만 얘기한다고들 하는데 입장 바꿔서 생각해봐요. 당사자들은 얼마나 힘들겠냐구. 내 자식이나 똑같은데, 장차 이 나라 이끌 아이들인데, 여행길에 한꺼번에 죽게 한 건 어른들 잘못이야.“
10일 오후 진도 팽목항에서 만난 강계동(65)씨는 1년 전 세월호 참사를 말하며 안타까워했다. 경기 화성에 살다가 암 수술을 받고 휴양 차 전남 해남에 내려와 있다는 그는 팽목항에 기억의벽을 설치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찾아왔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엿새 앞둔 이날, ‘세월호를 기억하려는 어린이책 작가 모임’(이하 작가모임)이 진행한 기억의벽 2차 설치작업이 팽목항 방파제에서 시작됐다. 결코 일어날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었던 일, 정말로 그랬듯이 멍하니 지켜봐서는 안 됐던 일을, 이제 기억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믿음에서 기억의벽이 만들어진다. 함께 고통스러워하고 함께 추억하겠다는 전국 수천명이 한뼘 타일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앞서 2월 23일 설치된 1차 기억의벽은 전체 170m 방파제 중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15일부터 전국에서 1,700여명의 시민이 참여해 완성된 타일 벽이다. 그 옆으로 붙이는 2차분 타일 2,920장이 9일 팽목항에 도착했다.
일을 도우려고 내려온 10여 명의 작가들이 밤새 타일을 분류했다. 1, 2차분을 다 합치면 총 4,656장, 손바닥만한 타일 한 장 한 장마다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여주의 가마에서 구워 가져왔다. 가마에 넣기 전 타일 하나하나를 점검하는 일도 여러 사람이 나눠서 했다. 하나라도 깨질까 봐 조심해서 옮긴 무게가 1톤. 트럭 기사는 기름값만 받고 운송해줬다. 타일 판매상은 한푼이라도 덜 받으려고 애를 썼다. 전국 곳곳에서 그렇게들 마음을 보태줬다.
작가모임은 자발적인 모임이다. 세월호 참사 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노란 엽서 만들기, 한뼘 그림책 걸개전 등을 진행하며 뜻을 모았다. 따로 대표가 없고 총괄, 홍보, 동양상 제작 등 일을 나눠 맡아서 하고 있다. 기억의벽은 한국작가회의, 세월호가족대책위원회와 함께 진행했다.
기억의벽 진행을 총괄하고 있는 임정자 작가는 “전체 참여자는 4,500명 이상, 작가만도500명 이상일 것”이라며 “워낙 많은 이들이 함께하는 일이라 누가 누군지 일일이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마음을 모아준 한 명 한 명이 다 소중해서 특별히 누가 인상적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그래도 기억나는 장면을 꼽자면 울먹이다가 끝내 타일에 그림을 그리지 못한 유가족, 울면서 그림을 그린 시민들이 생각나요. 특히 예닐곱 살 아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그리라고 일러주지 않았는데도 뒤집힌 배를 그리고 살려달라고 쓰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지요.”
많을 때는 10여 명, 적을 때는 5명 정도의 작가들이 팽목항에 머물며 일을 돕고 있다. 경기 고양에 사는 작가 신재섭(44)씨는 이날 아침 9시 안산 분향소 앞에서 출발하는 추모객 운송 버스를 타고 팽목항에 왔다. 오후에 도착하자마자 기억의벽 윗부분에 방수 페인트를 칠하기 시작했다. 집에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내려왔다는 그는 지난해 세월호 한뼘 그림책 북콘서트에서 시 낭송을 하고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으러 다니면서 이 일에 참여하게 됐다.
“참 속 상한 게 세월호 관련 행사를 하면 늘 모이는 사람만 모이는 거에요. 많은 분들이 참여하면 좋은데 안타까웠죠. 정부가 시큰둥하니 국민도 그런 것 아닐까요. 이게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닌 게 아니라 지금 팽목항은 사람이 많지 않다. 이날도 조도로 떠나는 배를 타려는 승객들을 빼면 기억의벽에 참여하는 작가와 타일 작업하는 사람을 다 합쳐도 열 명 남짓. 참사 직후 끝없이 이어지던 추모객 행렬이 거의 끊겼다. 1년 동안 이야기했으면 됐다, 이제 그만하라는 소리도 들린다. 신 작가와 함께 페인트칠을 하던 유영선(33) 작가는 “이해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양가적 감정”이라고 말했다.
타일 붙이는 일은 나주에서 활동하는 동양화가 몽피 김경학 일행 다섯 명이 하고 있다. 그는 구례 사성암을 지은 한옥 건축가이기도 하다. 그에게 그림과 건축을 배우는 대안학교 출신 문하생 3명, 함께 가르치는 동료와 팽목항에서 작업 중이다. 타일 한 장 한 장을 정성들여 붙이고 있다. 타일을 다 붙이고 나면 페인트 마감, 타일 간격을 탄탄하게 고정시키는 줄눈 놓기, 빗물 스며들지 말라고 방부목 대는 일이 남는다. 다 마치려면 2~3일 걸릴 예정이다.
타일 시공에 참여한 김 작가의 동료 정철환(43)씨는 착잡하다고 했다. “희생된 아이들 생각하면 마음이 참 안 좋죠. 그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이번 2차 시공은 기억의벽을 만든 취지문과 석조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으로 끝난다. 타일벽 중앙에 붙일 석조물은 세월호 희생자 304위의 이름을 초성으로 새긴다. ‘김철수’라면 ‘ㄱㅊㅅ’ 식으로. ㄱㅊㅅ는 그 초성으로 시작하는 수많은 다른 이름이고 바로 나일 수도 있다. 작가모임의 홍보를 맡고 있는 김하은씨는 “그들이 곧 살아있는 우리라는 뜻을 담아 초성으로 조각한다“고 설명했다. 석조물과 취지문은 12일 팽목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그날로 설치를 마치고 기억의벽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완성을 앞두고 있지만 끝은 아니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는 한 결코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팽목항에 오는 이들은 완성된 기억의벽과 석조물을 보며 희생자들의 이름을 불러보게 될 것이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 부르다 내가 죽을 이름들을.
오후 5시, 기억의벽 설치작업을 하던 이들도 철수한 방파제를 차가운 바닷바람만이 배회한다. 인적이 끊긴 방파제의 기억의벽 맞은편 난간에 걸린 노란 현수막이 펄럭인다.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다. “세월호 희생자분들, 그대들이 바로 나다.“
팽목항의 식당 주인은 불만을 쏟아냈다. “사람을 먹고 살게 해줘야지. 보상? 우리는 그런 거 받은 거 없어. 1년 됐으니 이제 저런 거 철거하고 관광객이나 오게 해주면 좋겠어.” 마음이 나빠서 하는 말은 아니겠지만 서운하게 들릴 수는 있는 말.
기억의벽에 타일로, 석조조형물로 남는 희생자들은 아무 말이 없다. 타일에 그려진 그림과 적힌 글씨만이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전한다. 그중 하나에 누군가 시를 써놓았다.
“엄마 엄마 비가 와도 울지마/ 아빠 아빠 눈이 와도 걱정마/소록소록 하얀 눈/솜이불로 덮을게/토닥토닥 빗소리/자장가로 들을게.”
봄이라지만 해질녘이 되자 쌀쌀해서 방파제에 오래 서 있기가 괴롭다. 저 바다에 아직 돌아오지 못한 9명의 고혼이 떠돌고 있다. 벚꽃 흐드러지고 조팝나무는 쪼르륵 귀여운 꽃을 단 채 바람에 흔들리는데, 작년 이맘때 이 꽃들을 만나러 떠났던 이들은 돌아오지 못한다. 봄은 오지 않았다. 그들을 잊는다면 봄은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진도=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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