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대면 "정권 눈치" 비판 불가피
메모 보강해 줄 추가 증거 확보 관건
진술 확보 어렵고 공소시효는 난제
친박계 실세들을 포함, 정치인 8명에 대한 금품로비 정황이 적힌 ‘성완종 리스트’가 공개되면서 검찰이 본격 수사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뇌물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금품 공여자의 사망으로 직접 진술을 확보하는 게 불가능해 현실적으로 어려운 수사인 때문이다.
수사의 관건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메모와 녹취파일, 그리고 성완종 리스트내역을 보강해 줄 추가 증거가 있느냐다. 그간 수사에서는 금품 로비와 관련한 증거나 진술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먼저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성완종 리스트’의 한계는 이름과 액수만 적시돼 있고, 글자 수도 55자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거명한 인사들에게 언제, 어떻게, 무슨 명목으로 금품을 건넸는지가 불분명하다. 더구나 리스트의 등장인물 8명은 입을 맞춘 듯이 금품수수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결국 성완종 리스트는 정치적 파장은 핵폭탄급이지만 수사 단서로서는 미완의 증거인 셈이다.
검찰이 주목하는 단서는 성 전 회장이 자살 직전, 경향신문 기자에게 자신의 금품 전달 내역을 털어놓은 녹취파일이다. 50여분 정도로 알려진 전체 통화 내용에 ‘성완종 리스트’의 신빙성을 높이는 내용이 포함돼 있으면 상황은 달라지게 된다. 검찰은 경향신문 측에 자료를 제출해 달라고 요청한 상황인데, 해당 언론사는 녹취파일 중 3분 51초 분량만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했다. 검찰이 확인에 나선 성 전 회장의 휴대전화 통화내역도 수사에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금품 전달에 관여한 성 전 회장 측근들이 검찰 조사에 적극 협조할 경우에도 수사는 탄력을 받게 된다. 성 전 회장은 경향신문과 통화에서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내가 직접 줬지요. 거기까지 가는 사람은, 심부름한 사람은 우리 직원들이고요”라고 했다. 성 전 회장의 폭로가 사실상 유언이 됐다는 점에서 해당 인물들은 적극적으로 진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이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산은 공소시효 문제다. 성 전 회장이 김기춘ㆍ허태열 전 실장에게 각각 10만달러와 7억원을 건넨 시점은 2006~2007년이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인 만큼 불법 정치자금일 개연성이 높은데, 정치자금법의 공소시효는 7년으로 이미 지났다. 다만, 당시 국회의원인 김기춘ㆍ허태열 전 실장에게 뇌물죄를 적용할 경우 공소시효(10년)가 남아 있어 사법처리는 가능하다. 이 경우 직무관련성이 입증돼야 하는데, 성 전 회장이 이미 사망한 상태여서 이를 입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금품 수수자로 지목된 인사들이 의혹을 부인하고 있는 지금 성 전 회장이 이를 반박할 수가 없는 상황도 문제다. 검찰 관계자는 “공소시효뿐만이 아니라, 법리적으로도 검토할 게 많다. 특히 수수자들로선 성 전 회장 주장의 신빙성을 탄핵하려 할 텐데 이에 맞서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김형식 전 서울시의원의 ‘재력가 살인사건’ 당시, 경찰은 살해된 송모씨가 남겨둔 로비 리스트 장부를 확보하고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장부에는 금품 수수자와 액수, 날짜 등이 상세히 담겨 있었지만, 당사자들이 혐의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송씨의 구체적인 진술 없이는 수사를 진전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완종 리스트의 파장을 감안할 때 검찰이 본격 수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오히려 수사에 미적대면 검찰로선 ‘정권 눈치보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고, 검찰이 의지만 갖고 있다면 실체 규명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은 때문이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이날 오후 대검 간부회의를 소집한 뒤,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과 최윤수 3차장검사에게 “메모지의 작성 경위 등 확인 가능한 부분을 확인하고, 관련 법리도 철저히 검토해 그 결과를 보고해 달라”고 지시했다. 결국 검찰은 수사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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