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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제국적 영토 논리와 평화의 지정학

입력
2015.04.12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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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출판사들은 정부의 지침에 따라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에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주장을 싣기로 결정했다. 역사 교과서는 8종 모두 ‘일본이 1905년 독도를 자국령으로 편입했다’는 내용을 게재하기로 했고, 공민과 지리 교과서도 비슷하다고 한다. 일본은 이미 지난해부터 초등학교 5, 6학년 사회교과서에 ‘한국의 독도 불법 점거’에 관한 서술을 싣고 있다.

일본이 1905년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했다는 논리는 당시 한일관계 및 동아시아 역사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사실 1905년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일본에 의해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고, 동해를 주요 무대로 러일전쟁이 전개되었던 해이다. 일본의 독도 편입 논리는 당시 일본의 제국적 침탈 야욕을 암묵적으로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제국적 영토 인식을 교과서에 서술한다고 해서 독도가 한국의 고유 영토라는 사실, 그리고 한국이 독도를 실효 지배하고 있는 현실이 달라질 리는 없다. 그러나 감수성이 예민한 초ㆍ중등학생들이 이런 교과서로 반복해서 배울 경우, 이들이 어떠한 영토 인식을 가질 것이며, 또 한국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일본 교과서에 관한 이러한 검정 결정이 있은 다음 날, 일본 정부는 독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는 2015년판 외교청서를 확정했다. 일본의 외교청서는 제국적 영토 논리를 강조할 뿐 아니라 한국에 대한 규정도 수정했다. 즉 한국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기본적 인권 등 기본적인 가치와 이익을 공유한다’는 표현을 삭제하고 ‘가장 중요한 이웃국가’란 표현을 남겨뒀다.

일본의 제국적 영토 논리와 더불어 ‘이웃국가’에 대한 무례한 태도는 분명 국제적 외교 관례를 무시한 도발적 처사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이를 기만적으로 포장하고 있다. 외교청서에 ‘전후 70년, 평화국가로서의 행보’라는 항목을 신설하고 “과거 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을 토대로 한 부전(不戰)ㆍ평화 맹세”가 “앞으로도 결코 바뀌는 일은 없다”고 서술한 것이다.

일본의 이러한 위장된 ‘평화주의’는 제국적 영토 논리와 모순된다. 일본 정부가 제시한 교과서 검정 기준과 이에 따른 검정 과정은 ‘독도가 일본 고유영토’이며,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주장을 반영하도록 명시할 뿐만 아니라 과거의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가해책임을 완화하거나, 식민통치 정책을 미화하려는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예로 교과서 검정과정에서 1923년 간토 대지진 때 “살해된 조선인이 수 천명에 달했다”는 내용이 “수 천명이라는 말도 있지만 숫자에 대해서는 통설이 없다”고 수정되었다고 한다. 또한 일제에 의한 조선 토지조사사업에 대해 “근대화를 명목으로” 했다는 표현이 “근대화를 목적으로” 했다는 것으로 수정된 사례도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일본 정부가 명목상 평화주의를 내세울 뿐 실제 과거의 제국주의적 입장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외교청서는 “군위안부 문제는 법적으로 완전히 해결됐다”고 서술하면서 “한국이 계속 일본에 대응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로서는 이를 정치ㆍ외교문제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이 진정으로 평화주의를 지향한다면, 과거 인접국들에 자행한 제국주의적 만행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 중국 등 동북아시아 국가들, 나아가 세계의 모든 국가들은 인접한 국가들과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구축된 지정학적 관계를 불가피하게 가지게 된다. 국가 간 지정학적 관계가 제국적 영토의 논리에 의해 좌우된다면 세계적 평화는 불가능하다. 만약 일본이 진정으로 인접국들과 평화의 지정학을 원한다면 제국적 영토 논리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최병두 대구대 지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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