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 "곡소리 날 판" 호소에도 민관유착 연결 고리는 여전해
업무 경험 전무한 정피아들 판 쳐, 관피아는 양반
취업제한 연장에 OB들 몸값 상승도
#. 대부분 공무원들이 ‘관피아 척결’ 움직임에 몸을 바짝 낮췄지만, 관료라고 다 같은 관료가 아니었다. ‘힘 센’ 관료들은 아랑곳 않고 제 갈 길을 찾아갔다. 지난달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회장에 임명된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대표 사례다.
#. 지난해 8월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로 임명된 방송인 자니윤(본명 윤종승ㆍ78)씨는 감사 업무 경험은커녕 기업에서 일해본 경력도 없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재외선거대책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은 것이 경력의 전부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관료+마피아)가 빠진 자리를 윤씨 같은 정피아(정치인+마피아)가 재빨리 비집고 들어갔다.
#.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금융당국 수장이었던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과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로펌에 재취업했다. 공직자윤리법이 규정한 퇴임 후 취업제한 기간(2년)이 올 초 끝나기 무섭게 로펌들이 러브콜을 보낸 것이다. 전관의 ‘매력’은 2년이 지나도 여전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지난해 4월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대통령까지 나서 ‘관피아 척결’을 외친 결과 지난 1년간 공직자윤리법 개정, 김영란법 국회 통과 등 적지 않은 제도가 뜯어 고쳐졌다. 현직 공무원 입에서 ‘곡소리’가 날 정도의 변화라고는 하지만 민관유착이 줄어든 기미는 보이지 않고 ‘풍선효과’만 두드러져 보인다는 비판이 높다.
세월호 참사는 무능과 부패라는 공직의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내 보인 사고였다. 불법 개조된 세월호가 평형수도 채우지 않은 상태로 화물을 과적한 채 항구를 떠날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는 선박 인허가권을 지닌 공무원들이 퇴직 후 관련 기관과 단체에 취업을 보장받는 민관유착의 고리였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으로 민관유착의 관행을 꼽고 강도 높은 공직사회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5월19일 대국민담화에서 “민관유착은 비단 해운분야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수십년간 쌓이고 지속되어 온 고질적 병폐”라면서 “민관유착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관피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따라 공직자윤리법이 ▦취업기간 제한을 퇴직 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고위공무원의 경우 재취업 심사시 업무 관련성 판단 기준을 소속부서에서 소속기관 업무 전체로 확대하고 ▦취업제한 기관에 시장형 공기업, 사립대학, 종합병원 등 1만5,033개(당초 1만3,586개)를 추가하는 내용으로 대폭 강화됐다.
2012년부터 추진됐지만 아직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던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공무원 등 공직자에 대한 여론 악화 바람을 타고 지난달 국회를 통과했다. 관피아의 폐해를 끊겠다는 취지로 공직사회에 5급 공채와 민간경력자 채용을 단계적으로 5대5 수준으로 맞추는 방안도 추진됐다.
제도만 놓고 보면 공직사회에 가해지는 부담감은 역대 어느 정권 때보다 높다. 공무원 사이에선 “만만한 공무원만 잡는다”,“숨이 턱 막힌다” 등 불만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그럴듯한 외견만 갖췄지 민관유착의 연결고리는 모습을 바꿔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관피아가 사라진 자리를 정피아가 채우는 부작용이 생긴 것이 대표적이다. 박영선(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실제 세월호 참사 전후로 공공기관 임원(기관장 및 감사) 자리에 관료 출신(관피아)은 161명에서 118명으로 줄어들었지만, 정치권 출신(정피아)은 48명에서 53명으로 늘어났다. 특히 정피아는 해당 직위와 관련 있는 경력이 전무한 문외한 인사가 공공기관 임원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해악이 관피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는 평가다. 이정주 서울시립대 반부패시스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권력자가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자기 사람을 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서도 “문제는 (현 정권이)자리와 관련된 전문성이 없는 인사를 수장으로 앉힌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 공무원들이 강화된 공직자윤리법에 발목을 잡혀 옴짝달싹 못하는 사이 힘 센 공무원들은 별 탈 없이 재취업에 성공하는 것도 ‘도대체 바뀐 게 뭐냐’는 비판의 대상이다.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지난달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신임회장 행에 대해 취업 허가 결정을 내렸다. 박기풍 전 국토교통부 1차관도 해외건설협회장 자리를 허가 받았고, 국민수 전 법무부 차관도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재취업을 허가 받아 ‘청(靑)출불패’ ‘대마불사’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취업 제한기간 연장과 대상기관 확대로 현직 공무원들의 재취업을 막은 것이 오히려 수년 전 공직을 떠난 OB의 몸값만 높이는 ‘풍선효과’만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감원 퇴직 후 2012년부터 손해보험협회 부회장을 지내고 최근 신한생명 감사로 자리를 옮긴 장상용 감사나, 기획재정부 출신으로 금융투자협회 부회장을 거쳐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감사 자리에 오른 남진웅 감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취업제한 기간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접었던 낙하산을 펴는 것도 “아직 멀었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명박 정부 때 주요 자리에 앉았던 인사들이 최근 줄줄이 취업제한 기간(2년)이 끝나면서 로펌이나 민간기업 등으로 잇따라 자리를 옮기고 있다. 양세영 한국청렴연구원장은 “공무원 취업제한 기간이 3년으로 늘었지만 3년이 지나면 또 (관피아가) 우수수 양산될 것”이라면서 “공직자윤리법 강화 같은 틀은 어느 정도 갖춰졌지만 뿌리깊은 연고주의 문화는 여전히 변한 게 없다”고 지적했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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