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안전 컨트롤타워 출범 5개월, 조직ㆍ시스템 정비 못 하고 허술
대책 쏟아내며 유난 떨었지만 관청도 시민도 안전불감증 여전
경기 의정부경찰서 신곡지구대 이재정(35) 순경은 지난 1월 10일 의정부 도시형 생활주택 화재 때 부상을 입어 3개월 넘도록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이 순경은 당시 아파트 3층에서 화염에 고립됐다가 콘크리트 바닥으로 뛰어내려 눈과 팔, 다리 등을 크게 다쳤다.
그는 왜 위험을 무릅쓰고 불길이 치솟는 건물 안으로 진입했을까. 이 순경은 당시 불이 난 아파트 3동 가운데 가장 늦게 불길이 번진 '해뜨는 마을' 1층에서 대피를 유도하던 중이었다. 대부분의 주민이 빠져나 온 것으로 파악된 그 순간 “건물 안에 사람이 더 있다”는 추가 지령이 내려졌고 이 순경은 동료 5,6명과 내부로 뛰어들었다. 비상벨이 울리고 경찰과 소방서의 수 차례 대피 명령에도 ‘설마 우리 집까지 번지겠나’하는 생각에 피하지 않고 있었거나 귀중품 등을 챙기려 무모하게 다시 들어갔다가 불길에 갇힌 일부 주민들이 112에 뒤늦게 신고한 것이다. 그곳에는 현금이 든 금고를 붙들고 피하지 않고 있던 주민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경찰관은 “화재가 진화되자 집안에서 챙겨오지 못한 금붙이가 녹았다며 따지는 이도 있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화재 진압에 직접 나서는 소방관들에게는 이 순경과 같은 아찔한 경험이 더 많다. 수원소방서 구조대원들은 지난 2월 권선구의 한 아파트 화재 때 “우리 애기를 구해달라”는 한 여성의 다급한 목소리에 화염을 뚫고 진입했다가 갇힐뻔한 기억이 있다. 늦은 밤 14층 아파트 7층에서 난 불로 주민 70여명을 대피시킨 직후, 여성의 요청으로 다시 들어간 8층 내부에는 정작 ‘아이’는 없고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한 소방관은 “애완동물을 사람처럼 표현하는 이들이 있어 종종 벌어지는 일”이라며 허탈해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은 숱한 안전대책을 쏟아내며 유난을 떨었지만, 우리 사회 뿌리 박힌 안전불감증을 해소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허술한 안전시스템과 안전의식에 대한 ‘비상벨’이 곳곳에서 울려대고 있지만, 사회 전반은 아직도 이에 둔감하다는 것이다.
시민뿐 아니라 안전의식 개혁을 이끌어야 할 정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부문의 허술한 대응도 여전하다.
14일 경기 수원의 중심가인 수원시청 사거리. 인도로 통행해야 할 시민들이 차도에 설치된 폭 2m 안팎의 임시 통로로 아슬아슬하게 지나고 있었다. 바로 옆으로 버스와 승용차들이 질주하고 있었지만, 안전 대책이라고는 50~60cm 높이의 나무 난간이 전부였다. 지난 2013년 12월 개통한 분당선 수원시청역의 출입구가 인도 한가운데 설치되면서 시작된 아찔한 광경이지만 1년이 지나도록 수원시와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 등 관련기관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뒤늦게 인도 일부가 뚫렸으나 건물을 드나드는 차량 탓에 통행 불편은 마찬가지였다.
광역버스 좌석제는 안전정책을 즉흥적으로 남발했다 되레 혼란을 초래한 사례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토교통부와 경기도는 대표적인 위험요소로 거론돼온 입석버스를 제한한다고 발표했지만, 출퇴근 시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자 사실상 입석을 허용했다. 이용자들도 입석 금지 필요성에 찬성하다가도 막상 불편을 겪자 자치단체에 화살을 돌렸다.
조직과 시스템 정비도 1년째 여전히 진행형이다. 재난안전 총괄 컨트롤 타워인 국민안전처는 지난해 11월 19일 야심 차게 출범했지만, 5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인력마저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지하철, 항공기 등 대형사고를 책임질 특수재난실장은 현재까지 공석이고 특수재난실 특수재난지원관은 지난달 30일이 돼서야 채워졌다. 부서간 역할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지난달 인천 영종대교 106중 연쇄 추돌사고 때는 담당 부서가 어딘지 몰라 우왕좌왕했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허술한 사회‘안전망’과 개선되지 않은 ‘안전불감증’ 속에 지난해 10월 16명이 숨진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나 지난달 9명의 사상자를 낸 용인 교량상판 붕괴사고 등이 이어져왔다.
전문가들은 국가 대개조 작업과 더불어 범국가적인 안전문화운동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위험 요소를 목격하면 반드시 당국에 신고하는 등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의식이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형성될 수 있도록 안전교육을 정규 교육과정에 접목하고 관리 부실 책임자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찬오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재난 선진국에서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의 교육내용 50% 가량이 안전과 관련된 것”이라며 “지문 하나를 쓰더라도 안전 콘텐츠가 포함된다. 우리도 서둘러 정규 교육과정에 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위험요소를 목격하면 방치하지 않고 고발하도록 하고 책임자에 대해서는 살인 혐의까지 적용하도록 하는 결단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안전관리 의식을 높여 시민사회에 자연스레 녹아 들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는 5명이 목숨을 잃은 지난달 22일 인천 캠핑장 화재를 예로 들며 “가연소재로 된 숙박용 텐트가 수년 전부터 확산하고 있었지만,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면서 “국민의 안전은 정부가 구축한 유기적인 시스템에 의해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유명식기자 gij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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