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편이 어려운 한국 여성과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조건으로 위장 결혼을 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파키스탄 일가족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허위 혼인신고를 하고 한국 국적을 취득한 혐의(공전자불실기재) 등으로 파키스탄 출신 귀화자 A(51)씨와 아들(24), 조카(31)를 구속하고, 이들과 위장 결혼한 금모(47ㆍ여)씨와 쌍둥이 두 딸(21)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4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1999년 관광비자로 입국해 경기 시흥시의 한 공장에서 불법체류 상태로 일하다 금씨를 만나 “월세 등 생활비를 지원해주겠다”고 속여 2001년 8월 위장 결혼을 했다. A씨는 2005년 6월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 7개월이 지난 2006년 1월 ‘서류상 부인’인 금씨와 이혼했다.
A씨는 이혼 3개월 후에는 금씨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파키스탄 친구 B씨와의 위장 결혼을 알선하기도 했다. B씨는 불법체류 중에 적발돼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2010년 강제추방됐다.
한국 국적을 얻게 된 A씨는 2013년 7월 한국에 있는 자신의 친동생(44)과 공모해 파키스탄에 있는 아들과 조카도 국적을 얻게 해주기 위해 금씨의 쌍둥이 딸과 이듬해 2월 위장 결혼을 시켰다.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점검에 대비해 서로의 데이트 사진을 가짜로 찍게 하거나 각자 신체 특성이나 좋아하는 음식을 암기하게 하는 등 철저한 준비도 거쳤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가족증명서 등 파키스탄 정부가 발행하는 서류를 위조해 아들을 자신의 친동생에게 입양시켰으며 가상의 기업체 명의로 작성한 초청서류로 아들과 조카를 불법 입국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도주한 A씨 친동생의 행방도 쫓고 있다.
이들의 범행은 위장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A씨 아들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한 금씨의 작은 딸이 성범죄 상담을 받는 과정에서 전모가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외국인들이 국적 취득을 위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성과 위장 결혼하거나 알선하는 사례가 더 있는지 수사할 계획”이라며 “A씨가 다른 사람 여권으로 신분을 세탁해 입국한 것으로 확인돼 파키스탄 현지 대사관을 통해 혹시 모를 테러단체 소속 여부 등 신원에 대한 추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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