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한 군 관계자와 기자 몇몇이 식사를 하러 국방부를 걸어 나오던 길에 기무사 소속 요원을 우연치 않게 만났습니다. 저와는 초면인지라 간단하게 인사를 주고 받는 데 이 관계자가 순간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문 채 거리를 두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기무사 요원과 헤어진 뒤 갑작스레 침묵한 이유를 묻자 “기무사 앞에선 입을 다무는 게 상책”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이 관계자는 예전에 복무했던 부대에서 한 여군이 혼잣말로 ‘힘들다’는 말을 한 것을 기무요원이 듣고 부대장까지 조사하면서 몇 달 동안 부대가 한바탕 난리가 났다는 사례를 떠올리며 기무사 앞에선 말을 아껴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더군요. (다행히 해당 부대에서 불미스러운 일은 발생하지 않았고, 당시 여군의 발언은 업무에 지쳐서 내뱉은 지나가는 하소연이었다고 합니다.) 단편적이지만, 군인들이 얼마나 기무사를 두려워하는지 엿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앞선 사례에서 보듯이, 기무사 요원들은 각 부대에 파견돼 군 저변의 애환 등 전투력 저해요인을 미리 파악하거나, 국내외 방위사업에 관한 첩보 수집 등을 통해 군 기강을 바로 잡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군인들을 감시하는 워치독(watch dogㆍ감시견) 기능을 하는 조직이라고 보면 됩니다. 물론 과거엔 군인 범위를 넘어 민간인까지 사찰하는 권한 밖의 일에 가담할 만큼 엇나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었죠.
하지만 요새 최근 군 안에서 벌어진 각종 일탈 행위들을 보면, 기무사의 약발이 예전만큼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장 14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안보분야 대정부질문에서도 기무사의 무능을 질타하는 지적이 거듭 제기됐습니다. 국방위 소속 김용남 새누리당 의원은 “방위사업청에도 기무사 요원들이 상주하고 있는데 대부분 퇴직을 앞둔 사람들로 채워놨으니 근무 의욕도 떨어진 것 아니냐”며 기무사의 감시 능력이 안이했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에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그런 지적을 받아들여 방사청에 근무하는 기무사팀 인원도 늘리고, 상주 인원들의 자질도 좋은, (앞으로) 군대생활을 많이 할 요원들로 대체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 기무사는 지난해 말 방사청 요원 담당 전원을 물갈이 했습니다.
물론 군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 사고의 책임을 기무사에게 모두 물을 순 없는 노릇입니다. 다만 군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무사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점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에 기무사는 최근 본연의 감시 기능에 충실하기 위해 사령부 본부 인력을 현장으로 대폭 내려 보내는 조직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추가 증원이 아닌 본부에서 일하던 사람을 축소하는 일이라 조직의 반발도 일부 없지 않았지만, 현장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름대로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입니다. 현장에서 워치독 기능을 강화해 군 기강을 다시 세우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기무사의 변신은 성공할까요.
한 군 관계자는 “군 스스로에 대한 견제 기능이 아예 무너진 상황”이라며 “기무사가 그늘진 과거도 있었지만, 말단부터 총장까지 기무사를 두려워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군의 자정능력이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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