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객들을 맞이하던 세월호 유가족도, 인근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한숨 짓던 실종자 가족도 보이지 않았다. 16일 정오 무렵, 사고 희생자 304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진도 팽목항에 설치된 분향소 풍경이다. 꼭 1년 전부터 하루도 빠짐 없이 이곳을 지키며 돌아오지 못한 가족을 기다리던 세월호 유족들이 이날만큼은 분향소 문을 굳게 닫았다. 추모식장에 마련된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의 자리에는 빈 의자만 놓여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은 까닭이다.
오전 11시56분쯤 검은색 정장을 입고 팽목항에 도착한 박 대통령을 맞이한 것은 1년 전 사고 현장에서 손을 잡아주던 유족이 아니었다. 박 대통령은 ‘인양 갖고 장난치며 가족들 두 번 죽이는 정부는 각성하라’고 적힌 플래카드 아래 놓인, 실종자 9명의 얼굴을 담은 피켓만 물끄러미 바라보다 발길을 돌려야 했다.
희생자들을 기리는 기억의 벽이 설치된 방파제로 발길을 옮긴 박 대통령은 50여m 가다 멈췄다. 동행한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사고 해역의 방향을 물은 그는 세월호가 가라앉은 바다를 뒤로 한 채 대국민 발표문을 낭독했다. 그리고 방파제를 다 둘러보지도 않은 채 곧 팽목항을 떠났다.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을 면담하기 위해 계획했던 40여분의 팽목항 방문 일정은 가족들의 외면 속에 그렇게 25분만에 끝났다. 이 허탈한 장면을 지켜본 일부 시민들은 대통령이 떠나는 길목에서 “세월호를 인양하라” “약속을 지켜라”고 소리쳤다. 한 시민은 “추모하러 온 건지 시찰하러 온 건지 모르겠네”라고 비아냥거렸다.
박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발표문을 통해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선체 인양에 나서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결론이 나면 인양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던 며칠 전 발언보다 인양 여부를 좀 더 분명히 밝힌 셈이다. 세월호 1년을 맞아 나름의 ‘선물’을 갖고 현장까지 직접 찾아온 것은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있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세월호 유족들에게 바람을 맞은 것은 그동안 쌓인 정부에 대한 깊은 불신 때문이다. 세월호 1주기 취재를 위해 2주간 진도에 머무르면서 만난 유가족은 한결같이 “사고 1년이 되도록 단식하고 삭발하며 진상규명을 외칠 줄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또 “세월호 특별법 제정부터 4ㆍ16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입장은 항상 가족들의 뜻과 평행선을 달려왔다”고 하소연했다. 특조위 활동을 ‘세금도둑’으로 폄하하고,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비유하고, 유가족 주장에 대해 ‘지겹다’고 했던 여론은 상당 부분 정부ㆍ여당 쪽에서 나왔다. 그 깊은 감정의 골이 박 대통령의 ‘깜짝쇼’ 한번으로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청와대 참모들은 유가족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있는 셈이다.
“가족들을 위로했다는 모양새를 만들기 위한 보여주기식 행보” 이게 현장에서 접하는 유가족들의 반응이다. 청와대 참모 중 한 명이라도 팽목항에 미리 내려와 유가족의 얘기를 경청했더라면 적어도 대통령이 유가족으로부터 철저히 외면 받은 볼썽사나운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신뢰를 잃은 정부의, 대통령의 위로는 유족들의 마음에 닿지 못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그들은 왜 모르는지 답답하다.
진도=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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