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자원봉사자·주부…
각계각층 사람들 힘 보태
기억저장소·기억의 벽 등 만들어
지난 2일 경기 안산시 고잔동의 한 허름한 상가 건물 3층에 ‘기억의 방’으로 이름 붙여진 사진 전시관이 마련됐다. 54점이 전시된 사진에는 책상 위에 장난스럽게 놓은 구충제, 벽면을 가득 채운 아이돌 연예인의 포스터, 몇 년은 족히 넘었을 손 때 잔뜩 묻은 기타와 전자피아노 등이 있을 뿐, 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흔적만을 남기고 이 방의 주인은 어디로 갔을까’라고 사진들은 조용히 되묻고 있었다. 사진 속 방의 주인은, 다름 아닌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다.
1년 전 침몰하는 세월호를 바라보며 함께 눈물 흘렸던 우리는 당시의 슬픔과 고통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이 질문에 “세월호의 기억을, 교훈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며 두 팔을 걷어 올린 사람들이 있다. 시민단체 활동가와 자원봉사자부터 카메라와 펜을 든 작가들까지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이 작업에 동참하고 있다.
기억의 방은 지난해 12월 사진 작가 16명과 2,000명에 가까운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마련한 곳이다. ‘4ㆍ16기억저장소’라는 단체를 꾸린 후 유가족의 집을 일일이 방문해 아이들의 일기장 등 유품을 수집하고, 희생된 아이들의 마지막 흔적이 담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권용찬 기록물관리팀장은 “상근활동가와 작가, 자원봉사자들이 희생자들의 삶을 그대로 복원해 참사의 교훈을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함께 모였다”고 했다. 이들은 기억의 방에 전시된 사진 말고도 희생자 100여명의 생전 모습을 기록물로 만들었다. 이들 기록물은 경기 안산시가 마련해 준 서고에 보관 중이다.
‘기억의 벽을 만드는 어린이작가들’ 소속 어린이책 작가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서울, 대전, 부산 등 전국 26개 지역을 돌아 다니며 시민들의 추모 글과 그림을 수집했다. 시민들의 호응은 생각 이상이었다고 단체 작가들은 입을 모았다. 수천명의 시민들이 애도의 글을 담아줬으며 경기 여주시의 한 도예소는 이 글들을 타일로 만드는 과정에 힘을 보탰다. 그리고 타일들은 진도 팽목항 ‘기억의 등대’ 옆에 세운 ‘4,500개 기억의 타일’의 재료로 사용됐다.
학생들을 구조하다 끝내 목숨을 거둔 남윤철 단원고 교사의 모교인 국민대에는 고인의 뜻을 기리는 ‘남윤철 강의실’이 만들어졌다.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남윤철 장학금’도 신설됐다. 승객을 구조하다 숨진 세월호 승무원 박지영씨가 집안 사정으로 중퇴했던 수원과학대에서는 박씨의 얼굴을 새긴 부조 동판을 설치한 ‘박지영 홀’이 만들어졌다. 이 곳에서는 지난 15일 박씨를 기리는 추모제가 열렸다.
‘잊지 않겠다’는 마음은 국경도 넘었다. 미국과 캐나다, 유럽 등지에서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한인들이 만든 ‘세월호를 잊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세사모)이 지난해부터 세월호 추모 집회를 열어왔다. 모임의 주축은 대부분 어린 자녀를 둔 30,40대 주부이고 여기에 남편들도 돕겠다고 나섰다. 이들 초대로 지난달 미국 서부에 다녀온 고 이재욱군의 어머니 홍영미씨는 “생면부지 사람들이 서로 자기 집에 머물다 가라며 우리 손을 잡아 끌었고 우리 이야기에 함께 울어줬다”면서 “‘세월호를 기억하겠다’는 그들의 말에 큰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일반 시민들도 세월호 1주기를 전후해 서울 시내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추모 행진과 플래시몹, 세월호 선체 인양 서명전 등에 참여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지난 11일부터 차려진 광화문 합동분향소에는 하루 평균 2,500여명의 추모객들이 발길을 잇고 있다. 분향소를 세운 최헌국 목사는 “‘그만 좀 하라’는 사람들보다 ‘잊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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