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커플 관계 증명서 발급 조례
도쿄 시부야구에서 지난달 통과
보수층 반발, 의회서도 위헌 논란
"성적 소수자 위해… 혼인신고할 것"
일본 도쿄에서 여성 연예인끼리 결혼식을 치르면서 동성결혼 허용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여성 탤런트 이치노세 아야카(34)와 여배우 스기모리 아카네(28)는 지난 19일 신주쿠(新宿)의 한 예식장에서 친척과 지인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다. 신랑은 없고 하얀 드레스차림의 신부 두 명만 나란히 등장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두 사람이 서로 “예쁘다”고 치켜세우는 등 예식 분위기는 시종 화기애애했다. 스기모리는 결혼식 후 기자회견에서 “미래에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성적 소수자들이 좀 더 쉽게 결혼할 수 있도록 결혼식을 하게 됐다”며 “언젠가 양자 등의 형태로 우리의 아이도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이치노세는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혼인신고서도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모험’을 감행했지만 가장 축복해줘야 할 가족 일부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의 완전한 공감을 얻어내긴 힘들었던 셈이다. 이치노세는 집안에서 자신들의 ‘딱한 사랑’을 이해는 하지만, 결혼식에 기자들이 몰린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와 동생이 불참했다고 설명했다. 부모와 함께 온 스기모리도 “진심으로 찬성할 부모는 아직 일본에선 적다고 생각한다”며 복잡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치노세와 스기모리는 2012년 10월 신주쿠의 게이바에서 만나 이듬해 2월부터 교제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치노세는 2009년 한 주간지를 통해 동성애자임을 세상에 고백했으며, 뮤지컬 배우 활동을 하는 스기모리 역시 “내 마음의 90% 이상이 여성을 선호한다”고 말해왔다.
이들이 공개 결혼식까지 하며 ‘시위’에 나선 건 일본사회의 최근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 도쿄 시부야(澁谷)구가 지난달 31일 일본에서 처음으로 동성커플에게 결혼한 것과 거의 동일한 효력을 지닌 증명서 발급 조례를 만든 것이 계기가 됐다. 새 조례는 부동산업자나 병원 등이 일명 ‘파트너 관계 증명서’를 소지한 동성커플을 부부와 동등하게 대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 가족을 대상으로 한 구영주택에 동성커플도 입주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부부와 같은 수준의 법적인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관계 증명서 발급은 보수층의 반발을 불러 의회에서도 논란이 됐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올 2월 참의원 본회의에서 시부야구 움직임과 관련 “현행 헌법하에서는 동성커플의 혼인성립을 인정하는 것이 상정돼 있지 않다”며 “우리나라 가정의 존재방식 근간에 관한 문제로서 매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일본헌법 24조는 혼인이 양성(兩性)의 합의에만 기반해 성립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반면 다나무라 마사유키(棚村政行) 와세다(早稻田)대 교수는 “당시엔 동성혼 논의는 이뤄지지 않아 배척하고 있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다”며 “법 아래서의 평등에 비춰보면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성커플에 대한 긍정적 입장은 확산되는 분위기다. 도쿄 세타가야(世田谷) 구의회도 시부야구와 같은 조치를 검토 중이다. 일본에선 동성커플이 상당수준 보편화된 게 현실이다. 심지어 멋진 소년들의 동성애만을 다룬 만화가 여성 마니아층을 형성한지 오래됐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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