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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는 부패 고리… 은밀한 라운딩 꼼짝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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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는 부패 고리… 은밀한 라운딩 꼼짝마"

입력
2015.04.2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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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골프장에 부패 신고 핫라인

접대받은 공무원 조사 연일 보도

베이징 등 불법 골프장 폐쇄

중국인들 골프에 이중적 반응

각종 규제와 부정적 인식에도

학교체육 중심으론 확산 분위기

최근 세계 최대 골프 시설을 갖춘 중국 광둥성의 한 유명 골프장에 ‘핫라인’이 설치됐다. 중국 반부패위원회가 설치한 것인데, 만약 공무원이 업무 시간에 골프를 치다 발각되면 즉각 통보되는 시스템이다. 또 골프장 시설 관리ㆍ감독 공무원이 골프를 쳐도 즉각 통보 대상이다. 공무원이 업무 관계자들과 골프를 치거나 내기 골프를 쳐서도 안된다. 반부패위 관계자는 “기업인과 공무원 간 많은 은밀한 거래들이 골프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며 핫라인 설치 이유를 설명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패와의 전쟁’이 마약, 도박, 매춘, 부정 축재에 이어 ‘녹색 마약’ 으로 치부돼 온 골프로 확대되고 있다. 이제는 중국 내에서 ‘귀족 스포츠’로 인식된 골프를 사정해 부패의 뿌리뽑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사정의 칼날, ‘골프’ 정조준

반부패위는 지난달 30일 상무부 왕선양(王瀋陽) 국장을 ‘반부패 규정 8항’을 위반한 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왕 국장은 모 기업으로부터 골프 접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법무부는 지난 10년 동안 골프를 치다 적발돼 처벌을 받은 15명의 명단을 최근 발표했다. 이 중에는 교통기획부 수장이었던 순궈칭과 선전시 공무원 한장을 비롯해, 국영 기업 임원 및 고위 공무원이 포함돼 있었다. 순궈칭은 골프장 이용료를 공금으로 지불한 혐의를 받고 있고, 한장은 100만원 상당의 골프장 회원권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부패위는 최근 홍보지를 통해 “고급 술과 담배, 차량, 저택과 같이 골프는 기업인들이 공무원들을 현혹시키는데 사용하는 전형적인 도구”라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인들이 돈을 투입해 힘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골프를 이용하고 있다”며 “골프장은 진흙탕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와 함께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지난달 말 베이징과 샹하이, 톈진 등 20개 지역 66개 불법 골프장을 적발해 폐쇄하는 등 사정의 칼날을 골프에 집중시키고 있다.

국영 언론들도 최근 “당 관리 및 공무원들이 골프를 통해 부정부패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는 취지의 뉴스를 보도하면서 거들고 있다. 실제로 최근 고위 경제관료가 모 업체로부터 접대 골프를 받은 정황이 포착돼 사정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는 연일 전파와 지면을 채우고 있다. 언론들은 “최근 당 관리들을 타락시키는 강력한 유혹은 골프”라고 밝히고 있다.

중국 하이난성 싼야시의 한 골프클럽에서 선수와 캐디가 다음 샷을 위해 거리를 재고 있다. 하이난=AFP연합뉴스
중국 하이난성 싼야시의 한 골프클럽에서 선수와 캐디가 다음 샷을 위해 거리를 재고 있다. 하이난=AFP연합뉴스

골프 탄압, 왜 ?

‘금지왼 게임 : 골프와 중국의 꿈’의 저자 댄 워시번은 “시진핑 국가 주석은 반부패 단속 행위를 통해 군 장성이나 당 고위관계자들을 축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반부패라는 명목하에 정부는 모든 이들을 잠재적인 감시 대상으로 삼을 수 있으며, 골프는 반부패 감시 수단으로 더 없이 좋은 도구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골프는 귀족 스포츠”라는 생각이 보편적으로 스며들어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중국의 한 언론은 “골프는 비싼 장비와 시설을 갖추고 있다”며 “부패한 골프를 즐기는 일부 관계자들이 처벌되거나 구속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가 골프를 이중적으로 대하고 있는 점도 개선점으로 꼽힌다. 중국의 한 비평가는 “어떤 날엔 신문 1면에 골프와의 전쟁에 대한 기사라 실리고 어떤 날에는 중국 골프 스타에 대한 기사가 실린다”고 지적했다. 워시번은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자본주의 시장의 힘을 인정해야 하는 국가적인 모순에 처해 있다”며 “모순된 정부의 모순된 정책에 골프는 끊임없이 핍박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골프, 탄압의 역사

중국의 골프 탄압 역사는 이번뿐만이 아니다. 과거 마오쩌둥(毛澤東) 전 국가주석은 골프를 ‘녹색 아편’ ‘백만장자들을 위한 스포츠’라고 부르며 경계했다. 아예 외국인 전용 골프장도 대거 공원이나 동물원, 농장으로 바꿔버리기도 했다.

2004년에는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골프장 신규 건설을 금지했다. 실제로 물 부족에 시달리는 중국 내륙지방의 경우 “골프장이 들어서면서 지하수 부족 현상이 나타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이 골프 인기 마저 묶어 놓지는 못하고 있다. 외신들에 따르면 중국 골프장은 1984년 처음 개장한 이후 30여년 만에 600개를 넘어 섰고 골프 인구는 100만명을 돌파했다. 또 일부 골프 애호가들은 “골프 자체는 부패 스포츠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상하이 골프 코치 린샹은 신화일보 칼럼에서 “전세계적으로 많은 공무원과 고위 관료, 심지어 대통령들도 골프를 즐기고 있다”며 “왜 특정 국가에서만 골프가 부패로 의심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학교체육을 중심으로 골프가 점차 확산하는 분위기다. 국영 체육학교에 재학중인 10대 골프 유망주들과 학부모들은 머지 않아 중국에서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배출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특히 지난 주 중국 선전 골프대회 1라운드에서 건설노동자 출신 골퍼 후앙원이(세계랭킹 1,189위)가 최상위권에 오르면서 중국 골프팬들을 열광시켰다. 물론 최종 라운드에서 13위로 떨어지긴 했지만, 불모지에서 그가 거둔 성과는 골프 유망주들과 코치들을 흥분 시키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다.

베이징의 골프애호가라고 밝힌 장모(60)씨는 “자기 비용을 들여 골프를 즐기는 것까지 정부가 관여할 순 없을 것”이라며 “올림픽과 각종 골프 대회 출전 선수들을 위해 국가가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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