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개혁' 다섯 번이나 언급, 성완종 파문ㆍ난국 정면 돌파 의지
"핵심 측근 의혹 휩싸였는데… 국민 의식과 동떨어져" 지적도
박근혜 대통령은 28일 발표한 성완종 리스트 파문 관련 대국민 메시지에 난국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았다. 박 대통령은 중남미 순방 강행군으로 건강이 악화해 공식 일정을 취소한 상황에서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을 통해 ‘병상 메시지’를 내놓는 깜짝 카드를 썼다.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메모로 남긴 친박계 인사들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에 한정하지 말고 여야 정치권의 과거 비리까지 확대하라는 사실상의 지침을 내렸다. 나아가 성 전 회장의 노무현정부 당시 수상한 특별사면 의혹에 대한 진실 규명까지 당부했다. 박 대통령이 이번 파문에 핵심 측근들이 연루된 것에 대해 사과하라는 여야의 요구를 물리치고 과거 야당 정권을 직접 조준하면서 정국은 더욱 얼어붙게 됐다.
과거 정권 정면 겨냥…정국 냉각 예고
박 대통령은 “(정치권에) 금품 의혹이 과거부터 어떻게 만연했는지 등을 낱낱이 밝혀서…”, “이번에 반드시 과거부터 내려온 부정, 비리, 부패를 척결해서…” 등 ‘과거부터’라는 표현을 두 차례나 썼다. 노무현정부 등 과거 정권까지 겨냥한 대대적 사정 확대 가능성을 경고한 것이다. 여야를 불문하고 마당발 인맥을 만들었던 성 전 회장의 비자금 비밀장부를 검찰이 찾아낼 경우,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서 이번 파문이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부에서는 청와대가 과거 정권 인사들의 비리 정보를 이미 입수한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이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박 대통령은 불법의 몸통”이라고 원색적으로 비판하는 등 예민하게 반응했다. 청와대와 야당이 정면으로 맞붙으면서 극심한 정국 경색이 한 동안 이어지게 됐다.
박 대통령은 또 ‘정치 개혁’을 다섯 번이나 언급했다. 이번 파문의 종착점이 일부 친박계 인사들의 금품 수수 의혹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검은 돈과 관련한 정치권의 병폐를 해소하는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해 현정권의 도덕성 논란에 실망한 국민들을 달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언급에는 성완종 파문은 일부 측근 인사들의 개인 비리일 뿐, ‘깨끗한 정치’를 해 온 박 대통령 스스로는 이번 파문에서 자유롭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그러나 전ㆍ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등 핵심 측근들이 의혹에 휩싸여 있는데도 박 대통령이 책임의식을 느끼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국민 인식과 동떨어진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병상 메시지’ 통한 국정 공백 최소화 의지
박 대통령은 27일 중남미 순방에서 귀국한 당일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사표를 수리한 데 이어 하루 만에 병상 메시지를 내놓았다. 박 대통령이 당분간 휴식을 취하면서 29일 국회의원 재ㆍ보선 결과를 지켜본 뒤에야 생각을 다듬어 입장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과는 다른 발 빠른 조치였다. 박 대통령은 현안에 대해 두세 문장의 간결한 논평을 내는 것을 선호하지만, 이 날 김성우 수석에게 대독시킨 메시지는 약 2,000자에 달할 정도로 길었고 이번 파문과 관련한 여러 측면들을 세세하게 짚었다. 박 대통령은 29일 선거를 앞두고 적극적으로 수습에 나서 표심을 돌리고, 자신의 침묵이 국정 공백 논란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판단한 듯하다.
박 대통령은 국회가 공무원연금 개혁안과 청년일자리 창출 법안 등을 처리하는 데 협조해 줄 것도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국회의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 시한이 나흘 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번에 처리하지 않으면) 내년에 매일 국민 세금이 100억 원 씩 새어 나가게 된다”고 언급하고 “국가 경제와 미래 세대를 위해 이번 개혁을 반드시 관철시켜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 드린다”고 말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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