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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의 신 시바가 다녀간 걸까… 성한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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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의 신 시바가 다녀간 걸까… 성한 곳이 없었다

입력
2015.04.30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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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폭삭, 가옥 대다수 붕괴 직전

"가족과 연락 두절" 주민들 발 동동

초기 구조 카트만두ㆍ포카라 집중

피해 가장 컸지만 이제서야 손길

[저작권 한국일보] 30일 오전 지진 피해를 직접 입은 네팔 고르카에서 까지 수레스타씨 가족과 지인들이 집안 살림을 트랙터에 실으며 피난길에 오르고 있다. 장재진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30일 오전 지진 피해를 직접 입은 네팔 고르카에서 까지 수레스타씨 가족과 지인들이 집안 살림을 트랙터에 실으며 피난길에 오르고 있다. 장재진 기자.

세계 최고의 봉우리를 자랑하던 산악국가에 힌두교 파괴의 신 시바가 다녀간 것일까. 네팔 국민 10명 중 8명은 “힌두의 신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 믿고 살고 있는데, 신이 이번엔 어떤 선물을 주기 위해 이런 시련을 내린 것인지 짐작하기 불가능하다.

30일 한국 언론사 최초로 기자가 찾은 도시 고르카는 25일 발생한 규모 7.8 지진의 진앙과 인접해 피해가 가장 컸던 곳이다. 초기 구조와 사태수습이 수도 카트만두와 관광도시 포카라에 집중되면서 진앙과 가까운 고르카에는 이제서야 구조의 손길이 뻗치기 시작했다. 재난이 마을을 휩쓸고 간 그곳은 흡사 ‘폼페이 최후의 날’과 같았다. 현지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곳 주민 약 28만명 중 사망자는 400여명, 부상자는 1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수도 카트만두에서 북서쪽으로 80㎞ 거리에 위치한 고르카는 1769년 네팔을 통일한 고르카 왕조의 근거지로 네팔에서도 유서 깊은 곳으로 꼽힌다. 제국주의 시절 영국은 고르카 지역 전사들의 용맹함에 매료돼 이들을 영국군에 편입한 뒤 지역명을 따 ‘구르카 용병부대’를 만들기도 했다. 이들은 1, 2차 세계대전, 걸프전 등 전장을 누비며 프랑스 외인부대와 함께 세계 최강 용병무대의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고르카 곳곳은 건물잔해로 아수라장이 됐다. 장재진 기자
고르카 곳곳은 건물잔해로 아수라장이 됐다. 장재진 기자

고르카 용사들의 고향은 ‘지도에서 지워져 없어졌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처참했다. 도로 곳곳은 지진 충격으로 웅덩이가 움푹 파였고 인도는 건물 잔해로 뒤덮여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2, 3층 규모의 가옥 대다수는 충격으로 지붕이 파괴되거나 옆으로 기울어 붕괴 위험에 직면해 있다. 때문에 주민들은 집안에서 최소한의 생필품만을 챙겨 안전한 저지대로 대피 중이다. 피난민 까지 수레스타(38)씨는 “이곳에서 15년을 살았지만 이런 비극은 처음 겪었다”며 “다행히 가족들은 무사하지만 건물에 남은 세간살이가 비에 젖어 못 쓰게 될 것 같다”고 걱정했다. 그는 이어 “지붕을 덮을 천막이 필요한데 집집마다 상황이 같아 물건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했다.

겨우 목숨을 건진 주민들은 지진 발생 당시의 공포상황에 지금도 몸서리를 친다. 최초 지진 발생 당시 진원지 근처 굼다 마을에서 구사일생으로 빠져 나온 랄 마야 구릉(39ㆍ여)씨는 “춤을 추는 것처럼 몸이 흔들려 주변 사람과 부둥켜 안고 울었다, 너무 무서웠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구릉씨는 “엄마가 아직 마을에 있는데 연락이 닿지 않아 생사여부를 모른다”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라뿌 빌구나 마을이 고향인 너르 바하두르 구릉(61)씨도 “집에 돌아가고 싶지만 길이 폭삭 무너져 내려 전혀 오갈 수 없다. 길을 복구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주변서 가장 큰 병원도 여건 열악

침상 50여개ㆍ의료진 20여명뿐

밀려드는 부상자 치료에 역부족

주민들 "텐트ㆍ식량 필요" 아우성

고르카 병원의 지붕. 곳곳에 금이 가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장재진 기자
고르카 병원의 지붕. 곳곳에 금이 가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장재진 기자

열악한 의료 여건 탓에 부상자들은 제대로 치료 받기가 쉽지 않다. 12시간을 걸어 산골 마을에서 고르카 시내까지 피신했다는 풀 마야 구릉(38ㆍ여)씨는 “땅의 진동으로 넘어져 무릎이 깨지고 발목까지 접질려 퉁퉁 부었지만 연고만 조금 발랐다”며 아픈 다리를 어루만졌다.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의료기관인 고르카병원에는 침상이 50여개 밖에 없고 의료진도 20여명에 불과해 쏟아져 들어오는 사상자들을 돌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때문에 부상자 상당수는 바닥에 자리를 깔고 간단한 치료만 받고 있다. 게다가 병원마저도 지진 충격으로 지붕과 벽 곳곳에 금이 가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고르카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는 낄 뽀르사르 띠와리(55)씨는 "수술실이 부족해 간이 휴게실을 개조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부상자들이 사망자로 바뀔 수 있어 더 많은 의료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고르카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는 낄 뽀르사르 띠와리(55)씨는 "수술실이 부족해 간이 휴게실을 개조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부상자들이 사망자로 바뀔 수 있어 더 많은 의료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이런 사정 때문에 사상자 대부분은 포카라 등 인근 지역으로 후송되고 있다.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낄 뽀르사르 띠와리(55)씨는 “수술실이 부족해 간이휴게실을 개조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부상자들이 사망자로 바뀔 수 있어 더 많은 의료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호활동이 비교적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카트만두에 비해 고르카 지역 산골마을 대부분은 도로가 끊기거나 통신이 두절돼 접근이 쉽지 않다. 따라서 작은 마을의 피해 상황은 제대로 집계조차 되지 않고 있다. 우다르 라즈 띠밀세나 고르카시 지역개발부 부장은 “지금까지 300여명을 마을에서 구조했고, 추가적으로 100명을 더 구해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정확한 숫자는 아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물기가 있는 바닥에서 밤을 지새울 때 필요한 매트리스와 비바람을 피할 텐트, 식량이 가장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 같은 요청에 네팔 정부는 고르카 지역에 2,000만루피(20만달러)를 지원했다. 어주른 쩐더 고르카 경찰서장은 “인근 지역 모든 헬기를 동원해 착륙이 가능한 마을 순으로 물품을 보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폭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치안 활동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르카=글ㆍ사진 장재진기자 blanc@hk.co.kr

지진으로 도로 곳곳이 균열된 모습. 장재진 기자
지진으로 도로 곳곳이 균열된 모습.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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