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대비 적립금 비율 35%, 세계 최대 규모
복지부-김연명 교수 공방서 정부 '적립금 유지' 고집 드러나
8년 전 소득대체율 낮췄다가 정치논리 휘둘려 U턴 뇌관으로
미래세대 부담 떠넘기기 vs. 현 30~50대 '낀 세대' 과도한 부담
6일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처리가 무산되면서 부칙으로 넣기로 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조정안도 미뤄졌다. 소득대체율 상향으로 촉발된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싱겁게 연기됐지만 일단 공론화의 장은 열렸다. 그러나 시작부터 공방이 이어지며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피로감이 적지 않다. 보험료를 현재 9%에서 1%포인트만 올려도 소득대체율을 50%로 끌어올리는 게 가능하다는 김연명 중앙대 교수의 주장에 대해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보험료 인상에 대한 우려에서 나아가 ‘국민연금 폭탄론’을 주장하며 맞섰다. 왜 이렇게 양측의 주장에 큰 차이가 나는 지, 과장된 사실은 없는지, 국민연금 개혁의 해법이 달린 4가지 쟁점을 점검했다.
▦정치 논리에 휘둘리는 국민연금…국민은 불신
현행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40%는 평균 월 소득이 100만원인 사람이 40년 동안 국민연금 보험료를 냈을 때 은퇴 후 40만원을 매달 받게 된다는 의미다. 1988년 도입 당시 40년 가입기준의 소득대체율은 70%(보험료율 3%)로 혜택이 큰 제도였다. 그러나 국가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1998년 소득대체율을 60%(보험료율은 9%로 인상)로 낮췄고, 2007년엔 보험료 인상없이 소득대체율만 대폭 낮춰 40%로 고정했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부부가 국민연금에 가입했을 경우 꽤 괜찮은 연금 혜택을 받는데 왜 가입률이 저조한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는데, 문제는 불신이다. 국민연금제도가 정치논리에 휘둘리면서 기금 고갈론이 수시로 거론돼 국민들은 과연 내가 낸 돈 만큼 연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갖는다. 경제가 불황에 빠지면서 비정규직이 늘고, 국민연금에 가입하고 싶어도 당장 빠듯한 형편 때문에 보험료를 낼 형편이 안 되는 저소득층이 많은 점도 문제지만, 정치논리에 휘둘린 이번 국민연금 논란 이후 탈퇴하고 싶다는 여론이 커지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소득대체율 50% 조정은 2007년 이후 제기된 공적 연금 강화안으로, 이번 공무원연금 실무협의기구에서 여야와 보건복지부 실무진의 합의를 거친 것임에도 보험료 인상을 증세로 받아들이는 여론의 악화로 정치적 쟁점이 되자 새누리당이 막판에 돌아섰다. 불씨만 지피고 허무하게 종료된 셈이다.
▦보험료율 둘러싼 복지부와 김연명 교수의 설전
당장 보험료가 올라가고, 미래에 받는 연금은 주요 노후수단이라는 점에서 국민연금은 가입자 모두가 내용을 확실하게 알아야 하지만 복잡한 계산법을 꼼꼼히 살펴볼 여력이 있는 사람은 드물다. 때문에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놓고 복지부와 중앙대 김연명 교수가 뜨거운 공방을 벌였다. 공무원연금 개혁 실무기구에 야당 추천위원으로 참여한 김 교수는 시민단체에서 오랫동안 공적연금 강화를 외쳐왔다.
김 교수가 5일 “복지부가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이기 위해 필요하다고 한 보험료 2배 인상은, 국민연금의 기금을 2100년 이후까지 유지시키는 데 드는 비용이며 이럴 경우 기금이 2083년에는 GDP의 140%까지 적립된다”고 비판하자 복지부는 6일 “국민연금 고갈 시점과 적립금을 부풀린 적이 없다”고 반박하는 보도해명자료를 배포했다.
김 교수는 2060년 국민연금이 소진될 것으로 가정해 보험료를 1.01%포인트만 더 올리면 된다고 주장하는 반면 복지부는 2100년 이후까지의 기금 유지를 가정해 현재(9%)의 2배인 18.85%로 높여야 된다고 맞서고 있다. 그런데 복지부가 제시한 수치는 2083년 17년치인 약 2,100조원의 적립금을 쌓아놓고, 기금 고갈시점을 2100년도 이후로 연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김 교수는 자신이 주장한 보험료 1%포인트 인상안은 복지부에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릴때 필요한 보험료를 문의해 얻은 수치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복지부가 과도하게 보험료 인상에 대한 공포를 불러 여론을 호도했다는 것이다.
▦적립금 475조원…계속 쌓아야 하나
국민연금 고갈이 정말 위협적인 것인가에 대해서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현재 쌓여있는 기금은 475조원이다. 이중 36%인 172조원은 현 세대가 낸 보험료로 인해 생긴 투자수익금이다. 처음부터 기금적립 없이 그 해 걷어 바로 지출하는 부과방식을 택했다면 172조원의 수익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다.
연금전문가들은 연금 역사가 비교적 짧은 우리나라의 경우 연금 성숙기까지 어느 정도의 적립금은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른 나라와 그 수준을 비교할 때 쓰이는 표준지표가 GDP 대비 적립금 비율인데 35%로 세계 최대 규모다. 복지부는 “노르웨이(GPFG)의 경우 이 비율이 157.9%나 된다며 기금 운용의 문제는 있을지언정 규모가 크다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연명 교수는 “노르웨이의 경우 공적연금의 적립금 아닌 북해 유전에서 생산된 원유를 매각한 돈을 적립해 운용되는 국부펀드로 운영 주체가 다양화돼 자본시장 왜곡 효과가 크지 않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통계를 따로 잡는 것을 물타기 해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2060년 적립금 소멸 시점 후 부과방식으로 가자는 게 아니라 연착륙하도록 조정하면 될 일”이라고 설명했다.
국공채발행이 필요하거나 주식시장의 변동이 심할 때 연기금은 경제안정화에 큰 도움이 되지만 반대로 적절치 못한 기금 운용이 부실한 경제를 떠받치면서 독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국민연금 운용위원회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건실한 중소기업이나 신성장사업에 투자하자고 해도 지나치게 정치적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적립금을 쌓다가 부과방식으로 변환한 독일도 연기금 활용도가 우리나라처럼 과도하게 높지 않다는 지적이다.
▦저소득층 배제, 미래세대 부담론 역풍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는 2,113만명이지만 월소득이 적을수록 국민연금 가입비율이 낮다. 비정규직으로 고용이 불안한 경우, 절반을 부담해야 하는 사업자가 보험료 내주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월 소득 100만원 미만인 경우는 15%만 국민연금에 가입했고, 100만~200만원은 60.7%, 200만~300만원은 82.3%, 300만~400만원은 92.1%, 400만원 이상은 96.6%로 임금수준이 높을수록 100%에 가까운 가입률을 보인다. 은퇴 후 받는 연금 역시 보험료 납부에 비례해 많이 내면 그만큼 많이 돌려받게 되지만 소득이 낮아 제도를 이용할 수 없는 이들이 1,653만명이나 된다.
때문에 2007년 국민연금 개혁 때 소득대체율만 깎으면서 보완책으로 내놓은 기초노령연금을 이번에 더 확대하는 쪽으로 국민연금을 손질하는 게 우선이라는 학자들도 여럿 있다. 상위 50%를 위한 국민연금을 공적연금 강화로 의미부여 할 수 없기 때문에 아예 논의 틀을 바꿔 기초연금 강화로 가자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9%로 OECD 회원국 평균 13%보다 4배나 높다.
미래세대에 대한 ‘부담 떠넘기기’에 대해 김연명 교수는 거꾸로 30~50대의 부담이 크니 그걸 미래세대와 나눠야 한다고 설명한다. 현재 생산활동 인구인 30~50대는 부모도 부양하고 자식도 돌봐야 하는 ‘낀 세대’로 오히려 이중부담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국민연금 적립금 172조원 역시 현세대가 보험료를 내서 생긴 것으로 지금의 30~50대가 또다시 부담을 지는 것이야말로 불공평하다”며 미래세대가 부담을 함께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미래세대가 앞세대에 비해 연금 재정 부담이 갑자기 크게 증가하는 것은 자명하다”며 후세대가 급격한 재정 부담을 기꺼이 수용할 것이라는 가정 역시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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